얼마 전 대구대학교 캠퍼스에서 사회학과 장례식을 치르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학교 측에서 사회학과를 한계학과로 정하고 2025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것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열렸다. 이미 전국의 대학교에서 일명 ‘문사철’이라 불리는 어문학과·역사학과·철학과는 사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경북대 불어교육, 한국외국어대 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말레이·인도네시아학과와 글로벌자유전공학부(자연), 명지대 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바둑학과가 폐지됐다. 지난해에만 전국 대학에서 1,118개 학과가 없어졌다. 특히 독문과와 불문과가 없어진 학교가 적지 않다. 반면 취업중심학과인 사회복지, 경찰행정, 보건재활, 웹툰전공, 게임학과, 스포츠헬스케어학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30년 전에는 4년제 종합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으로 나누어져서 4년제에서는 학문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전문대학에서는 기술위주 학과로 구성했었다. 그러다가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가 되면서 90년대 말에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바뀌었고, 2010년대에 약대가 6년제로 바뀌는 시점에 대학·대학교를 자유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었다. 이때 치위생과도 2년제에서 3년이나 4년제로 바뀌었다. 그렇게 생긴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가 지나고 이제 다시 전문대학 시절과 유사한 취업중심학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근래에 지방에는 많은 대학이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고 폐과하거나 폐교하고 있다. 이 현상 또한 이미 20여 년 전 지방에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때 예견된 일이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인기 있는 학과는 늘 변해왔다. 80년대 초반에는 공과대학에서 원자력공학이 최고였다. 90년대는 전자공학과 한의대가 인기학과였고, 2000년대는 정보공학이었다. 2010년대는 의대·치대·약대·수의대가 인기가 있었고, 2020년대는 모든 것을 제치고 의대다. 이런 와중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고사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 수도권에 위치한 약학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학원생과 연구생이 모두 외국인 유학생인 것을 보고 놀랐다. 자연과학과 기초과학 분야는 그나마 유학생으로 유지되고 명맥을 이어갈 수는 있지만, 인문학과에서는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구대에서 사회학과가 폐과 수순을 밟는 것이 안타깝지만 피치 못할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인기학과에 인문학이 밀리는 현상이 지속되다보면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밸런스가 깨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학교에서 인문학 내용은 배제되었는데 학과마저 사라지면서 기초인문학의 인프라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일제강점기 이후 초창기 인문학은 일본에서 들어왔고, 70년대 이후에는 미국에서 들어왔다. 그 이후에 많은 다양성을 지녔다. 90년대부터 배고픈 학문이라는 오명을 들으면서도 명맥은 유지했는데, 이제는 배고픈 학과를 넘어 폐과에 이르렀다. 비록 돈이 되지 않더라도 대학교에서 학문적인 명맥을 이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대학들이 미국대학처럼 기부금을 많이 받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충족하게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니 결국 학생이 적은 학과는 폐과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들도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다.
폐과로 인한 문제는 학생보다 연구하는 교수들이 갈 곳을 잃음으로써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기초학문들이 회복 불능 정도로 인프라가 소멸되는 것이다. 명지대에서 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를 폐과시킨 것은 충격적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의·치학에서 해부학을 없앤 것과도 같다. 특히 수학과 물리학은 미국에서 유학생에게 5년간 비자 연장을 해줄 정도로 핵심역량강화 학문이다.
이 폐과 소식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학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초학문이 흔들리면 그것을 기반으로 출발하는 응용학문들이 한계에 부딪치는 것은 당연하고 어느 시점이 되면 더이상 발전할 수 없게 된다. 백년지대계인 학문이 고작 삼년지대계로 하락하는 사태가 위험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