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 국내 최초 설치
별보다 많은 ‘2의127승’ 가지 연산 동시 처리 가능
연세대, 신약물질 개발 등 바이오 분야 활용 계획
실제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한 양자 컴퓨터가 국내 최초로 연세대학교에 설치됐다. 우주의 별보다 많은 가짓수의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연세대는 이 컴퓨터를 신약물질 개발을 비롯해 산업 전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쓰겠다는 계획이다.
연세대는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 ‘퀀텀컴퓨팅센터’에 설치된 양자 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을 20일 공개했다. 퀀텀 시스템 원은 IBM이 2019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범용 양자 컴퓨터다.
이날 공개된 양자 컴퓨터는 극저온 냉각장치 안에 탑재돼 있어 실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원통형 냉각장치 내부에는 층으로 나뉘어진 원판들이 전선으로 연결돼 마치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양자 컴퓨터가 위치해 있다. 양자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극저온 환경이 필수적이다. 표창희 IBM 사업본부장은 “헬륨 가스를 이용한 쿨링 시스템으로 영하 273도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우주의 온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퀀텀 시스템 원을 도입한 기관은 연세대가 처음이다. 연세대가 IBM에 라이센스료를 지불하고 독점 사용권을 갖는 형식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캐나다·독일·일본에 이어 해당 제품을 도입한 5번째 국가가 됐다.
양자컴퓨터는 ‘얽힘’이나 ‘중첩’ 같은 양자 현상을 활용하는 컴퓨터다. 정보가 ‘0, 1’ 두 상태로 저장되는 일반 컴퓨터의 ‘비트’가 아닌, 0과 1이 겹쳐진 형태의 ‘큐비트(qubit)’로 저장된다. 정보가 동시에 존재하므로 연산 속도는 매우 빠르다. 슈퍼컴퓨터도 1만 년이 걸리는 계산을 양자컴퓨터는 단 3~4분만에 끝낼 수 있다. 대신 온도·진동에 민감한 데다 계산 오류가 잦은 점 때문에 상용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퀀텀 시스템 원은 지금까지 출시된 양자컴퓨터 중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종의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인 ‘이글 프로세서’로 구동되는데, 연산 성능은 127큐비트다. 지난해 6월 IBM 연구팀은 이글 프로세서가 일반 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양자 유용성’을 입증한 바 있다.
양자 프로세서는 1큐비트가 늘어날 때마다 연산 성능이 2배로 늘어난다. 정재호 연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양자사업단장)은 “127큐비트 양자 컴퓨터는 우주에 있는 별보다 많은 2의 127승 가지의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는 이 양자 컴퓨터를 신약개발 등 바이오 분야에서 먼저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약 후보물질과 단백질 분자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재현해 최적의 값을 찾아내는 ‘분자 시뮬레이션’에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면 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예컨대 미국 화이자의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베크베즈’는 1회 투여에만 46억원이 든다. 정 원장은 “양자 컴퓨팅이 연산 비용을 줄여 준다면 46억원이 아닌 4억원, 4000만원짜리 약도 나올 수 있다”며 “가장 절박한 수요부터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연세대는 의료, 화학, 소재 등 분야에 양자 컴퓨팅을 적용하기 위해 학내 실무그룹들과 논의를 이어 나가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외부 산업체들의 문제 해결도 돕겠다는 목표다.
연산 도중에 오류를 고치기 어렵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IBM은 2029년까지 오류 수정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개발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