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출몰 부쩍 늘어
작년 소방서 구조 1445건
“환경 적응해 인간과 공존”
인수감염병 우려 신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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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 사는 A씨는 최근 퇴근길 아파트 단지 안에서 짐승 떼가 줄지어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A씨는 “처음에는 목줄도 하지 않은 개가 떼를 지어 가는 건가 싶어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너구리 떼였다”면서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단지 인근에 산이 있기는 하지만 산과 단지 사이에 양방향 8차로 도로가 있는데 어떻게 야생동물이 단지 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들어 서울 도심지역에서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너구리가 자주 출몰하는 시기는 6~9월이지만 최근 겨울철에 목격되는 사례가 늘었다. 서식지 주변에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먹이를 찾기 위해 도심까지 내려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 게시판 등에선 ‘너구리가 길고양이 밥을 먹고 사라졌다’거나 ‘너구리가 쓰레기 봉지를 뜯어 내용물을 뒤지고 있었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서울 도심지 출몰 야생 너구리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너구리가 발견된 자치구는 전체 25곳 중 16곳에 달했다. 너구리 출현은 2023년 기준 강동구(44건)가 가장 많았고, 종로구(37건), 관악구(34건), 강남구(27건) 순이었다. 주변에 녹지가 많은 곳인데도 너구리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소방서의 너구리 구조 실적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24일 소방청에서 받은 ‘2022~2024 너구리 구조 실적(전국)’ 자료를 살펴보면 2022년 479건이었던 너구리 구조 실적은 2023년 732건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445건으로 급증했다. 불과 2년 새 구조 건수가 3배가량으로 증가한 셈이다.
이 데이터는 소방청이 동물처리 구조 실적 자료에서 ‘너구리’를 검색해 추출한 것이다. 검색용 키워드에 너구리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를 고려하면 구조 건수는 더 많았을 수 있다. 너구리가 많이 구조된 시점은 9~12월로, 지난 한 해 전체 구조 건수의 54.2%가 이 기간에 집중됐다. 9월 155건, 10월 259건, 11월 253건, 12월 117건의 구조활동이 이뤄졌다.
너구리가 도심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유는 야생동물이지만 도심 생태계에 적응한 종이기 때문이다. 서울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서울 도심지 내에 너구리를 위한 최적의 서식지는 없으나 하천 주변, 산림 주변에서 서식 중이며 먹이를 얻기 위해 도심지로 출몰하고 있다”면서 “열악한 환경에도 높은 적응력을 갖고 있어 인간과 공존하며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서울에서 너구리가 살 수 있는 지역은 전체 면적의 32.2%인 195.2㎢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너구리는 미국의 라쿤처럼 귀여운 이미지는 아니다. 몸 전체가 검은 털로 덮여 있으며 꼬리에도 무늬가 없어 언뜻 봤을 때 개로 착각할 만하다. 실제로 너구리는 갯과 동물이다.
너구리는 인수감염병의 주요 매개체이므로 너구리를 보면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관계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
너구리가 인간에게 옮기는 질병에는 개선충증, 광견병 등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염시켰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미끼에 광견병 약을 섞어 도심 산이나 숲 등지에 배치하는 등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