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보험금 지급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적정한 손해액을 산정해주는 손해사정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국내 손해사정업계는 보험계약자로부터 손해사정을 위탁 받는 개인 독립 손해사정(이하 독립손사)과 보험회사과 계약을 맺고 손해사정업무를 위탁 받아 운영하는 법인손해사정업체(이하 법인손사) 등 크게 두갈래로 구분돼 있다.
특히 보험회사들과 손해사정업무를 위탁 운영하는 법인손사들의 경우 보수료 '후려치기(?)'에 갈수록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들어 K손사, S손사 등 일부 손해사정업체가 폐업을 하고, 폐업 수순을 밟고 있는 등 잇따른 손사업체들의 폐업에 시장 내 위기감이 점증하고 있다.
이에 학계 및 업계 일각에서는 현행 모범규준내 '손해사정 협의체'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보수의 적정성 확보를 위한 '표준 손해사정 보수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적인 손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질적 민원 속 손해사정 건수는 급증, 인력 공급은'정체'...손해사정자격 단일화 등 시험제도 개편 '필요'
24일 손해사정 및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한국보험학회는 'ESG경영 및 손해사정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보험정책포럼을 열고 국내 직면한 손해사정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포럼은 국내 보험시장은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보험금 산정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보험계약자간 마찰이 끊이질 않는 등 손해사정 전반에 대한 문제와 개선방안들이 논의됐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보험분야 분쟁보정 민원 처리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처리된 총 3만3천975건의 민원 중 손해사정(면부책결정·보험금 산정 및 보험금 지급)에 대한 불만 민원이 2만9천82건으로, 전체의 85.6%를 차지했다. 그 만큼 보험금 산정에 대한 보험계약자들의 설득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김명규 목원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보험종목별 시험을 치르는 기존의 방식을 개편해 먼저 공통과목에 응시한 후 선택과목을 통해 응시자가 실무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격을 평가 받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손해사정사 시험제도는 10개 이상 종목별 자격이 세분화돼 있어 진입장벽도 높고 현장에서 업무영역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득로 대한손해사정법인협회 회장은 "손해사정자 시험이 도입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그동안 손해사정사 인력 공급에 비해 손해사정 처리 건수가 상당히 증가했다"면서 "이에 적정한 수급을 맞추려면 시험 장벽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무위원회 소속 이강일 민주당 의원은 현행 손해사정제도 개선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 손해사정사 자격을 업무 영역별 구분 없이 통합, 운영하도록 했다.
김명규 교수는 "단일 손해사정사 시험제도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현 제도에서 과목별 합격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 해 볼 만하다"면서 즉 손해사정사 시험에도 또 다른 보험전문 자격증인 보험계리사 시험에 적용 중인 과목별 합격제를 도입, 형평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후려치기 보수에 인력수급 차질 속 고령화까지 '폐업위기"...시장 정상화 관건은 '합리적 보수체계' 확립
또한 이날 포럼에서는 손해사정제도 개선 등 손사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모범규준에 명시된 '손해사정 협의체'의 의무 이행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험협회는 현재 금융당국과 협의해 손해사정 업무위탁 및 손해사정사 선임 등에 관한 모범 규준을 마련,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범규준은 강제성이 없어 무용지물이란게 중론이다. 이에 따라 모범규준 내 손해사정 협의체 구성을 구성, 체계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보험사와 법인손사 양측은 상호 계약을 체결해 손사 업무를 위탁, 수행하고 있으나 손해사정 협의체는 무용지물이 된 채 보험사측이 입찰 등을 통해 최저입찰가를 제시한 법인손사에 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업은 운영해야 하는 법인손사들은 출혈경쟁을 감수하면서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나, 적잖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명규 교수는 "현재 모범규준은 손해사정업계보다는 보험업계측의 이익을 좀 더 대변하고 있는 편"이라며 "모범규준에는 손해사정 협의체 구성에 대한 내용이 있긴 하나 강제 규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을 비롯 보험사, 법인손사업계 등이 손해사정 실무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말 금융당국과 보험사, 보험협회, 손해사정업계 등은 모범규준을 개정해 손해사정 협의체를 자율적으로 구성해 운영하도록 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닌 임의 규정이고, 법률적 근거가 부재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학계와 법인손사업계 일각에서는 '표준 손해사정 보수기준' 제도의 도입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법인손사업체들의 업무 전문성 제고는 물론 경영 및 고용 안정성, 손해사정업무의 품질 제고 그리고 공정한 손해사정을 통해 소비자 만족 제도 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법인손사업체 한 대표는 "적절한 보수체계가 없이 최저입찰가로 업무 위탁사업을 낙찰 받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특히 손해사정 처리 건은 많아지고 있는 반면 보수료는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어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일부 법인손사업체들은 폐업을 하거나, 폐업 수준을 밟고 있는 등 업계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큰 상황"이라며 "일정 부분 이익규모를 확보해야 인력도 채용하고 손사업무에 대한 품질도 향상시킬 수 있으나, 현 상황은 낮은 급여에 새로운 인력 수급도 안돼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인데다가 업무 품질도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하락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표준 손해사정 보수기준제도를 도입하면 손해사정 위탁계약에서 최저가 입찰제 등에 따른 법인손사업에의 보험사에 대한 종속성 완화는 물론 경영상 독립성 확보 및 손해사정서비스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 물가상승률 감안한 보수료 정상화 긴요...손해사정보수료 협의체 및 적정가격 공표제 도입 '절실'
이에 구체적인 방안으로, 매년 최소 물가 및 임금상승률을 감안해 보험사와 법인손사간 보수료를 협의할 수 있는 가칭 '손해사정보수료 협의체, 운영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가칭 '손해사정보수 적정가격 공표제'를 도입해 금융당국이 정기적(2~3년)으로 원가분석을 통한 연구결과를 마련, 공표하고 보험사와 법인손사간 자율적으로 계약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법인손사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손해사정업무는 보험금 지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며 "합리적인 보험금 산정을 위해서는 손해사정을 그만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와 법인손해사정 양측은 파트너"라며 "이에 무엇보다도 합리적인 손해사정과 품질 제고가 중요한 만큼 이에 적정한 보수체계 확립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법인손사업계의 기조에 보험협회와 금융당국도 공감하는 분위기여서 보수료 산정의 적정성 재검토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법인손사업체와 보험업계는 업무 파트너 관계로 볼수 있는 만큼 손해사정 제도 개선에 대해 향후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도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 없으나, 손해사정제도 개선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는 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 청년일보=김두환 / 신정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