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꽃다운 딸의 출근길이었다. 이른 새벽 횡단보도를 건너던 딸을 차량이 덮쳤다.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사고를 원망할 틈조차 없었다. 병원에서 일주일 가까이 지켜보며 차츰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가족과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이 장기 기증이었다. 10년 전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 구경회 씨는 “그땐 너무 슬펐지만 지금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난해부터는 집사람과 함께 ‘납골당을 가도 울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당시의 선택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환자는 6명이 넘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아픔 속에서도 장기 기증은 또 다른 삶과 이어주는 선택이 됐다. 장기 기증의 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기증자 유가족들은 “너무나도 힘들었던 결정이 지금은 남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운 가족의 일부가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의 희망과 행복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택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사 현장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잃은 허수옥 씨에게도 그랬다. 2층 높이에서 떨어진 철골구조물에 맞은 남편은 싸늘해진 몸으로 돌아왔다. 허 씨는 “내 목숨을 줘서라도 살리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남편의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이라도 새 생명을 얻고 그 가족들도 자신처럼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며칠간 대화조차 거부할 만큼 반대했던 아들의 마음도 어렵게 돌렸다. 허 씨는 “아빠는 돌아오지 못하지만 다른 가족들만큼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자고 아들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모인 장기 하나하나가 생존자들에게는 절실한 상황이다. 절망의 시간을 건너 새 생명을 얻은 팽성강 씨의 경험이 단적인 사례다. 17세 어린 나이에 신부전증 진단을 받아 20년 넘게 투석에만 매달리던 그의 삶을 두 번의 장기 이식이 바꿔놓았다. 이식받은 첫 신장마저 망가졌을 때 두 번째 기적이 찾아왔다. 공교롭게도 처음 이식을 받은 날과 같은 8월 5일이었다. 팽 씨는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며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기증인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이식받은 신장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주며 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식 희망자와 가족들은 애만 태우는 실정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장기 기증인은 3931명으로 전년 대비 11.3% 줄었다. 같은 기간 장기 이식 대기자가 5만 4000여 명으로 5.6% 늘어난 점과 대비된다. 매일 8.3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다. 국내 장기 기증 등록률은 전체 인구 중 5% 안팎에 불과하다. 자발적 희망자들의 신규 유입도 지난해 13만 1569명을 기록해 전년도에 비해 14.9% 감소했다.
이렇게 등록해둔 사람들조차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소수다. ‘가족의 시신을 온전히 남겨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 때문이다. 구 씨는 “장기 적출을 결심하고도 끝내 피부 기증까지는 사인하지 못했다”며 “좋은 취지라 해도 막상 내 가족의 일이 되니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장기 기증은 본인 등록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뇌사자의 경우 반드시 가족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기증자 추모나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 역시 관련 제도가 발전한 미국·스페인 등에 비해서는 부족하다고 평가받는다.
유가족과 장기 이식자들은 장기 기증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김은경 씨는 “평소 기증 의사를 밝혔던 아버지 덕분에 가족의 뜻을 모을 수 있었고 그 선택으로 다른 이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며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용기를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