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서울시 면적의 80%에 달하는 산림을 잃게 된 대형산불은 국가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상향시켰다. 필자 역시 집안까지 퍼진 메케한 연기에 집 인근 산불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밤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산불 영상을 보는 동안 ‘목줄’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불을 피할 때 반려견을 데려갈 수는 없어도 도망칠 수 있게 목줄이라도 풀어주고 가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걱정 덕에 동물단체들은 산불 현장에서 동물 구조 활동을 펼쳤고,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이후 경북도는 산불 피해지역 반려동물의 구조와 치료를 위해 ‘이동 동물병원’을 운영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대다수 반려동물이 구조되지 못한 가운데, 산불 지역 중 불법 개 농장의 구조 문제로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번 산불 화재로 반려동물의 대피·구조·보호 등의 매뉴얼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9년 산불 당시, 모 방송인이 SNS에 ‘반려동물을 데려가 달라, 목줄은 꼭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게시해 뭇매를 맞았다. 당시에는 ‘반려견이 대수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릴 적, 이모할머니 댁 강아지 ‘복실이’와 주말마다 놀던 시절이었다. 그 옛날 시골 강아지들이 그렇듯, 복실이 역시 인생의 테두리가 1m 남짓한 그런 시골 강아지였다. 복실이는 갈색 긴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단 위에 앉아 놀고 있는 우리에게 목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다가와 함께 놀자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다가가면 발랑 누워 배를 보여주고, 우린 깔깔거리며 복실이를 쓰다듬었다.
어느 날 밤. 이모할머니댁 대문을 벌컥 열며 ‘할머니!’를 외치고는 무언가 조잘거리며 마당을 지나가는데, 반갑게 인사해주던 꼬리는 어디 가고, 집문서 훔치러 온 도둑을 잡듯 복실이가 무섭게 짖으며 내 점퍼 뒷부분을 이빨로 당기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나는 소리쳤고 어른들이 달려 나와 복실이를 떼어놓았다.
당시 6살 인생 제법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는지, 그 뒤로 나는 이모할머니 댁에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개 레이더’가 발동되었다. 이모할머니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대문이 열려있지 않은지 확인했고, 문이 열려있으면 최대한 길 끝에 붙어 가곤 했다. 공포심은 점점 커졌고, 과장을 조금 보태 몇백 미터 밖에서도 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의 실루엣과 짖음이 들리곤 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친구와 제주도 뚜벅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제주도는 정말, 정말, 정말 들개가 많았다. 작은 강아지의 견주인 친구마저 큰 들개가 무섭다 했을 정도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중 ‘개 레이더’가 발동했다. 친구는 뒷걸음치는 나에게 천천히 돌아서 걸으라 했고,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는데, 뒤를 돌자 정말 큰 대형견 두 마리가 우리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친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개에게 친근감의 소리를 냈고, 개들은 우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냄새를 맡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친구에게 무슨 소리를 낸 것이냐 묻자, ‘나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어.’라고 했다.
그렇다. 동물들은 우릴 먼저 해칠 생각이 없고, 죄가 없다. 모든 반려동물의 문제는 주인인 ‘사람’의 문제로 귀결됐다. 심지어 내 옷자락을 잡아 뜯은 복실이마저 밤에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나를 외부인으로 인식해 집을 지킨 것일 뿐이다. 할머니에게 ‘못된 개.’라고 한 소리 들은 복실이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반려동물을 학대, 폭행했다는 뉴스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처벌은 여전히 미비하다.
어쩌다 보니 지구의 주인처럼 행세 중인 인간이 주류이기 때문에 우리는 보호해 줘야 할 반려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인식개선과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요즘, 내 인생 다시는 없으리라 믿었던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 주변에 강아지가 있다는 것이다. 귀엽지만, 무섭다. 머리로는 반려동물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란 걸 알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언제나 그들이 날 공격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우린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운명체임은 분명하다. 동물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 학대당하는, 버려지는 개들이 없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다섯 발짝 떨어져 그들의 귀여움을 감상 한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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