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와 왕관

2025-04-17

폭설에 세상이 갇히면

토방에 장화 한 쪽 뒤집어 세워놓고

그 신발 바닥 뒤축에 모이를 올려놓았습니다.

마당에 뿌려놓지 그래요. 새 머리마냥 갸웃거리면

쉿! 조용히 창호지 문구멍으로 내다보라 했습니다.

저것 봐라. 힘 있는 새가 혼자 다 먹으려고

장화에 올라타지. 그럼 어찌 되겄냐? 장화가 넘어지면서

모이가 마당에 흩뿌려지지. 그러면 병아리도 먹고

굴뚝새도 먹고 참새도 먹고 까치도 먹는 거지.

처음부터 흩뿌려놓으면 되잖아요. 그건 다르지.

크고 힘센 놈은 작은 새들 앞에서

저렇게 굴러떨어져 망신 좀 당해봐야 해.

혼자만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우쳐줘야지.

새대가리라서 번번이 까먹지만, 참새는 짹짹

지빠귀는 뽁뽁, 날개짓으로 가슴 치며 웃어봐야지.

장화 속에다 모이 한 줌 넣어놓으면, 왕관이라도 쓴 양

몸통을 통째로 처박고서는 마루 밑을 기어다니는 꼴이야

뉴스 첫머리에서 늘 보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넘어진 장화를 가지런히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장화의 검고 깊은 두 눈이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시 ‘검은 장화-아버지 학교 38’, 이정록 시집 <아버지 학교>

겨울이 인고이자 위기이자 위대한 시간이었음은 봄이 오고서야 실감한다. 누런 풀들 사이에 푸르뎅뎅한 것들이 얼핏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푸른 생기가 텃밭을 점령한다. 머나먼 울릉도에서 온 부지깽이 옆에 산마늘과 곰취 삼 형제가 얼굴을 내민다. 수선화 옆에 분홍 심장을 빨랫줄에 널어놓은 듯한 금낭화도 피어난다. 이웃한 방풍과 눈개승마와 당귀 삼 형제도 지지 않는다. 땅두릅도 땅 밑에서부터 털 달린 잎을 내밀고, 광덕산 아래 식당에서 얻은 별목련도 꽃이 피었다. 심은 지 3년차에야 핀 딱 세 송이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별 같다.

우리 텃밭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사 온 식구들이 모여 산다. 금산과 영동에서도 오고 이웃들 텃밭과 마당에서도 왔다. 그 애들은 이웃집에 오기 전에 그 어디에선가 왔겠다. 나도 여기저기 떠돌다 여기 있다. 어디서 날아온지 모르는 게 태반인 씨앗들이 한세상 의지해 살다 가는 땅은 이 모든 존재들의 거주지다. 풀밭에 가까운 이곳을 새들은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참새들이 바쁘다. 뭘 찾아 먹는지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우아하게 걸어 다시 무언가를 먹고 날렵하게 날아간다.

잊을 만하면 폭설이 쏟아지던 지난겨울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장화를 “왕관이라도 쓴 양/ 몸통을 통째로 처박”은 권력자들의 말과 행태와 몰골은 초현실적이었다. “뉴스 첫머리에서 늘 보”던 사람들이지만, ‘법이라는 장화’ 밑에 군대라는 쇠붙이를 붙인 현직 실권자가 주동한 계엄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포이자 민주주의의 가혹한 시험대였다. 자기 맘에 안 들면 버럭 격노부터 하는 대통령 치하에서 우리 국민들 참 고생 많았다. 예의와 염치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자들과 반대로 긴긴 시간 품격을 잃지 않는 투쟁을 전 세계에 보여준 우리 국민은 위대했다. 그것은 매 순간 참을성을 요하는 일이었다. 절실하고 간절했기에 참으며 평정심을 가지고 방법을 모색하고 연대하고 대오를 유지할 수 있었겠다.

올봄엔 ‘일할 권한’을 왕관으로 착각하며 거들먹거리는 “크고 힘센 놈들”이 “굴러떨어져 망신 좀 당해” 봤으면 좋겠다. 참새와 지빠귀처럼 짹짹, 뽁뽁, 환호하며 “날개짓으로 가슴 치며 웃어” 보고 싶다. 4월 중순인 지금, 인도와 파키스탄은 44도가 넘어간다는데, 이 전대미문의 전 지구적 위기에서 밥 먹고 사는 게 과연 무엇인가 고민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전 국민이 길바닥에 나앉아 법과 도리와 상식을 외치는 대신, 우리 모두의 집인 이 지구 한 귀퉁이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거멀못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토방에 장화 한 쪽 뒤집어 세워놓”고 조심조심 “그 신발 바닥 뒤축에 모이를 올려놓”는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섬기는 세상의 첫 문을 올봄엔 간절히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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