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큐 인사이트 - 인재전쟁’이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의대 쏠림 현상’과 ‘이공계 기피’라는 고질적 문제를 다룬 이번 방송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사회적 공론장을 형성하며 KBS 수신료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납득시켰다.
3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진행된 인터뷰 자리에서 정용재 PD는 기획 시점부터 이 문제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구조적 위기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는 쫓아갈 수도 없을 정도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위기감이 촬영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의대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언론 보도나 책으로는 많이 다뤄졌지만, 우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중국 현지를 취재하고 온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1·2부작으로 묶어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고 싶었고,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했죠.”(정용재 PD)
다큐는 방송 이후 예상을 뛰어넘는 온라인 반응을 불러왔다. 유튜브 조회수는 폭발적이었고, 댓글에는 “전 국민이 봐야 할 영상”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이백 PD는 “이런 반응은 처음 겪어본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방송 후 시청자 한 명이 2부 영상에 슈퍼챗으로 50만 원을 후원한 일화는 그 반향의 크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한테 너무 잘 알려진 얘기라 반응이 클까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댓글마다 본인의 생각을 남겨주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논의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나름의 공론장을 만든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수신료에 민감한 시청자들이 오히려 공영방송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줬다는 느낌도 받았고요.”(이이백 PD)
과학기술 R&D 삭감, 의대 과밀, 이공계 유출 같은 현실적 문제를 다룬 이번 다큐는, 단순한 고발보다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를 질문한다. 그 중심에는 어린 세대의 미래와 교육에 대한 고민이 자리한다.
신은주 PD는 “아이들에게 과학자를 꿈꾸게 하려면 사회 전체가 롤모델을 보여줘야 한다”며 현실의 단면을 전했다. 입시에 매몰된 구조가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지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의대를 목표로 삼는대요. 여섯 개 원서 중 대부분을 의대에 쓰고요. 진로를 설득하려 해도 IMF 세대인 부모님의 입김이 강해요. 결국 안정적인 직업, 라이선스에 대한 집착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막고 있는 거죠.”(신은주 PD)
해외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제작진은 직접 중국을 찾았다. 코로나 이후 입국 장벽이 높아졌고, 특히 첨단 기술 분야 취재는 더욱 어려웠지만 제작진은 끈질기게 섭외에 임했다.
정용재 PD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관광으로도 가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직접 촬영을 위해 입국했다”고 털어놨다. 비자 발급부터 섭외까지, 모든 과정이 ‘현장에 목말랐던’ 제작진의 집념으로 이루어졌다는 후문이다.
중국의 교육과 기술 인재 양성 구조는 단순한 ‘스펙 경쟁’을 넘어선다. 상위 0.1%를 선발해 엘리트 교육을 시키는 중국 특유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 사회의 평등 교육 논의와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은주 PD는 “공식 석상에서는 아무도 그 교육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실제 인터뷰에서는 ‘차별 교육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며 인상적인 발언들을 전했다.
“중국 학계에서는 ‘과학 기술은 소수 천재들이 이끌어야 발전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에요. 평등한 기회를 준 상태에서 선발된 인재에게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건 차별이 아니라 당연한 선택이라고 보더라고요.”(정용재 PD)
국내 현실은 사뭇 다르다. 서울대 공대 학장에 따르면, 850명 중 120명이 이탈했다고 한다. 고작 4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정용재 PD는 그 원인을 ‘과학 인재에 대한 사회적 보상 부재’로 꼽는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거리에서 사진도 찍히고 사인도 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의대 못 가서 공대 간 루저’ 취급이에요. 학계와 산업계가 한몸처럼 움직이고, 국가적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야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요.”(정용재 PD)
제작진은 이번 방송이 단발성 문제 제기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래서 방송 이후엔 즉시 ‘3분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은주 PD는 “방송에서 다 풀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고, 토론회에서 그 아쉬움을 일부나마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큐가 찍은 ‘물음표’가 새로운 ‘마침표’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희가 결론을 내릴 수는 없어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답이 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다큐가 그런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신은주 PD)
카이스트와 서울대, 그리고 각 지역 대학까지 전국적으로 뻗어나간 이번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도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말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망하는 거냐’는 걱정을 하셨어요. 그만큼 큰 화두를 던졌고, 저희도 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이이백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