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 3년째 양측 피해 막대
점령지 기준 영토 분할 휴전 부상
안전보장 등 합의까진 산 넘어 산
성사돼도 양국 정치 후폭풍 예고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어 어느덧 3년을 맞게 되었다. 지난 3년간의 전쟁은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을 발생시켰다. 유엔인권최고사무소(OHCHR)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31일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4만명을 헤아리고 우크라이나 국외 난민은 680만명을 넘어섰다. 또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은 각각 수십만명의 병력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양측이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는 가운데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이제 종전을 원하는 목소리가 양국 모두에서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52%가 조기 종전을 위한 협상을 지지한다.
그러한 분위기는 러시아에서도 감지된다. 러시아 국민의 60%가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 찬성한다. 지난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강조해왔다는 점도 종전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러 방안이 논의되었다. 가장 주목을 받아온 대안 가운데 하나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벤치마킹한 이른바 ‘코리아 모델’이다. 말하자면 일정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형성된 전선을 기준으로 양측이 군사적 행동을 멈추는 휴전에 합의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점령지를 기준으로 영토를 분할하는, ‘우크라이나형 분단 모델’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의 참화를 일단 중단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란 점에서 일단 ‘코리아 모델’은 합리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휴전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쟁점이 적지 않다. 군사분계선의 획정뿐 아니라 정전 상태를 감시·감독할 제도적 장치의 구축을 둘러싸고 관련 당사국 간 견해 충돌의 가능성이 높다.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는 더 난해한 이슈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또는 서방군의 자국 주둔을 강력히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러시아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휴전의 후폭풍 또한 만만찮다. ‘코리아 모델’로 전쟁이 마무리될 경우 우크라이나는 동남부의 산업 거점지역을 포함해 총면적의 20% 이상을 상실함으로써 정치·안보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한편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소모했음에도 우크라이나의 제압에 실패한 채 분단 형태로 휴전에 합의하는 상황은 러시아의 패배와 다름없다. 더구나 이번 전쟁으로 인해 ‘슬라브 형제국’ 우크라이나와 적대 관계가 됨으로써 러시아는 상당한 전략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코리아 모델’을 통한 휴전이 가져올 그러한 결과는 양국의 국내 정치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코리아 모델’에 입각한 휴전 체제의 미래가 불안정할 것임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넘어 장기적으로 지역 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헨리 키신저는 평화롭고 안정화된 국제질서를 위해 강대국 간 행동 준칙을 구성하는 합의된 규칙(정당성)과 특정 강대국에 의한 규칙 일탈을 제어할 수 있는 기제(세력균형)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키신저, ‘세계질서’) 그러한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속가능한 평화 구조의 구축 여부도 글로벌 및 지역 차원의 ‘정당성’과 ‘세력균형’에 연관된다고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는 이제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 대신 중국의 급부상, 러시아의 강대국화 행보, 글로벌 사우스의 등장 등으로 인해 국제질서는 다극 체제에 접근하고 있다. ‘정당성’과 ‘세력균형’의 변화가 진행 중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라시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 또한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와 함수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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