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DC에서 ‘노숙자·범죄자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연방수사국(FBI)·주방위군 등 법 집행 인력을 워싱턴DC에 대거 투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자치구인 워싱턴DC를 연방화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DC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DC의 치안 능력을 질타하면서도 정작 이 도시의 경찰국 예산 지원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텐트, 범죄, 불결함이 생기기 전 워싱턴DC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였다”면서 “노숙자들은 즉시 떠나라.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 곳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범죄자들은 떠날 필요 없다. 당신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감옥에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대대적으로 벌여온 미등록 이민자 단속을 상기시키면서 “내가 국경을 잘 관리해 지난해 불법 월경자가 ‘제로’였던 것처럼, 우리 수도 역시 진정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1일 워싱턴DC ‘미화 작전’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FBI 요원 120명이 이미 워싱턴DC에 투입됐으며, 비밀경호국 직원들도 워싱턴 DC에서 특별 순찰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10일 전했다. 앞서 미 CBS 방송은 지난 8일 연방정부 법 집행 기관들이 회의를 열어 주 방위군, 연방보안관, 국토안보부 직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등의 워싱턴DC 배치 계획을 검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 직접적 배경으로 DOGE 전 직원의 폭행 피해 사건이 꼽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끌었던 DOGE에서 미국국제개발처(USAID) 해체 작업 등에 참여한 에드워드 코리스틴이 지난 3일 워싱턴DC 로건서클 인근에서 차량을 탈취하려던 10여명의 청소년에게 심한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워싱턴DC는 완전히 통제 불능이다. 신속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연방 정부가 이 도시를 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워싱턴DC 자치권을 빼앗아 올 의향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변호사들이 그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도시의 범죄율은 최근 들어 계속 감소하는 추세였다. 살인·강도와 청소년 범죄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워싱턴DC 검찰청의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폭력 범죄는 35% 줄어들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워싱턴DC의 범죄가 통제 불능이라 질타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이 도시에 지원하는 치안 예산을 지난주에 44%나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공화당이 다수인 연방하원 역시 지난 3월 워싱턴DC 예산을 11억달러 이상 대거 삭감해 경찰국 인력 운용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부터 워싱턴DC를 연방화하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미 공영라디오(NPR)는 “워싱턴DC는 민주당 지지층이 압도적으로 강한 곳”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년 동안 이 도시를 ‘살인과 범죄의 악몽’ ‘더럽고 범죄가 만연한 곳’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구 70만명인 워싱턴DC에서 2016년 대선 때는 4%, 지난해 대선에선 약 7%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 방위군 투입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만약 그의 우선순위가 무력을 과시하는 것이라면, 그가 워싱턴DC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워싱턴DC의 범죄 급증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과 연방정부 기관, 미 연방의회가 위치한 워싱턴DC는 어느 주에도 소속되지 않은 특별 행정 구역이다. 1973년 자치구로 독립해 시민들이 직접 시장과 시의원을 선출한다. 그러나 여전히 시 예산과 법률 등에 대한 감독권은 연방 의회가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은 워싱턴DC 주 방위군의 통제권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DC를 연방화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뚫고 미 연방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