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운서, 배우, 그리고 스쿠버 다이버까지. 최송현씨(43) 이름 뒤에는 여러 직업이 따라붙는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삶’이라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겠지만 그 이면엔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5월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최씨를 만났다.
최씨는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하며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신입 때부터 ‘상상플러스’ 등 인기 프로그램의 MC를 맡으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2년여가 지난 2008년 그는 돌연 회사를 그만둔다. 당시 밝혔던 퇴사 사유는 새로운 꿈을 찾아간다는 것. 하지만 16년이 지나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이제 내려가볼까요?’에서 그는 KBS 퇴사는 ‘포기’였다고 털어놨다.
“회사에선 제가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가 된 것 같았어요. 인기 방송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아나운서국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이나 질시가 있었죠. 버티기 힘들더라고요.”
그가 택한 다음 직업은 배우였다. 연기를 하려고 아나운서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회사로부터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고 앞으로 뭘 할지 고민하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동경해온 연기에 도전했다. 학창 시절에는 연기자가 되는 걸 반대하던 부모님도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모습을 본 터라 딸의 선택을 믿어줬다. 연기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얻는 행복도 컸다. 운전하며 배역의 전사(前事)를 생각하다 목적지를 놓친 적이 여러번 있을 정도로 깊이 몰입했다. 캐릭터와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던 시간도 소중했다.
물론 어려움에 부딪힐 때도 있었다. 2012년 한 일일드라마에 출연할 때다. 처음엔 비중이 큰 역할로 캐스팅됐지만 드라마 내용이 바뀌며 최씨의 분량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연기하는 게 행복했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오히려 주변의 위로였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때 올림픽 중계로 드라마가 결방하면서 일주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기분 전환을 위해 새로운 걸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인이 지나가듯 권유했던 스쿠버 다이빙이 떠올랐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했다.
“처음 교육받을 때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는 거예요. 그때 제가 칭찬에 고픈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나운서로 입사했을 때 ‘키가 작아서 남자 MC와 함께 세우진 못하겠다’ ‘너 같은 목소리가 어떻게 뽑혔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연기하면서도 작품에 폐를 끼칠까 봐 늘 전전긍긍했죠.”
그에게 스쿠버 다이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치유의 시간이 됐다.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훈련을 받았다. 2015년에는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수강생을 가르칠 땐 칭찬을 많이 해주려 노력한다. 그가 몸소 느낀 칭찬의 힘을 전달하고 싶어서다.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생각했는데 누군가 해준 칭찬의 부력(浮力)으로 다시 떠오르는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른다.

최씨는 스쿠버 다이빙의 매력으로 ‘말하지 않을 자유’와 ‘내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꼽는다. 카메라 앞이나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오랫동안 그를 짓눌러왔다. 물속에서는 말의 빈자리를 호흡이 채운다. 숨을 내쉴 때 생기는 공기 방울을 눈으로 보고 그 공기 방울이 터지는 소리를 귀로 듣는다. 끊임없이 나를 돌보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해양 생태계 보호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제주 바닷속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활동을 하고 여러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해양 생태계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바다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바다를 지켜야 해’라는 말이 와닿을까요? 바다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해양 생태계 보호를 이야기하면서 쓰레기로 뒤덮인 모습만 보여주는 게 아쉽기도 했고요. 2018년부터 물속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해양 생태계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