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노을이 지나간 뒤, 깜깜한 밤이 오기 전 찾아오는 블루 아워. 파란 하늘 위를 작은 점들이 음악처럼 일렁인다. 작품 제목 ‘Murmurations(찌르레기 떼)’에서 알 수 있듯, 그 점들의 주인공은 수만 마리 찌르레기 떼가 펼치는 군무다. ‘하늘의 풍경화’와 같은 궤적을 포착한 이는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가 요하네스 보스그라다. 그는 집 근처 프리슬란트의 자연 보호구역에서 이 뜻밖의 장면과 마주했다. 마치 거대한 교향곡에 맞춰 펼쳐지는 발레처럼 느껴졌던 새들의 군무는 그렇게 그의 주요 시리즈가 되었다.
그에게 사진적 뮤즈는 언제나 풍경이었다.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한 그에게 풍경은 현대 클래식 음악과도 같다. “풍경을 보면 내 머릿속에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 풍경이 떠오른다.” 그에게 풍경과 음악은 서로 스며 하나가 된 완전체로,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그는 필립 글래스 등 작곡가·연주자들과 협업해 클래식 음악과 결합한 비디오 설치작업을 선보였고,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업 이전까지 그의 풍경 속에는 새나 동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무 시리즈는 보스그라 자신에게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서 기록을 시작했다. 하지만 찌르레기의 첫 촬영을 편집하는 순간, 그는 블루 아워에 찍은 몇 장의 이미지에 바로 매료된다. 자신의 작업에서 추상과 단색을 활용한 미니멀한 미학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을 캔버스 삼에 펼쳐지는 찌르레기들의 군무, 잘 곳을 찾아가던 이들은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 검은 회오리처럼 날아오르다 이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화롭게 선회했다. 보스그라에게 그 순간은 아람 하차투리안의 발레곡 ‘칼의 춤’에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 들려왔다. 고요하면서도 깊은 파란 하늘 위로 흐르는 새들의 실루엣은 마치 ‘푸른 추상’처럼 묵직한 명상적 울림으로 다가온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