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세번의 ‘돼지날’에 걸쳐 빚는 술 ‘삼해주’…주당들 매료

2025-02-24

“버들개지가 흩날릴 때 처음 열어 사용하는 까닭에 유서춘(柳絮春)이라 부른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라는 백과사전을 집필한 조선 최고의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가)였다. 113권, 52책으로 구성된 ‘임원경제지’는 16개의 지(志·부분)로 정연하게 분류돼 있다. 서유구는 당시 조선의 다른 백과사전 저자와 달리 항목마다 조선·중국·일본의 앞선 문헌에 나온 내용의 출처를 밝혔다. 앞에서 인용한 글은 요리법과 술 제조법이 정리된 ‘정조지(鼎俎志)’의 ‘삼해주방(三亥酒方)’에 나온다. 서유구는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에 먼저 등장한 삼해주 제조법을 정리하고, 마지막에 앞의 글을 덧붙였다. ‘유서춘’의 ‘유서’는 버들개지, ‘춘’은 술이란 뜻이다.

누룩으로 빚은 우리 곡물 술은 제조법에 따라 단양주(單釀酒), 이양주(二釀酒), 삼양주(三釀酒) 세가지로 나뉜다. 단양주는 한번만 발효시킨 술이다. 막걸리가 바로 대표적인 단양주다. 이양주는 단양주에 다시 곡물과 누룩·물을 부은 술이다. 조선시대 요리책에 나오는 맑은 술인 청주 대부분이 이양주다. 이양주에 또다시 곡물과 누룩·물을 부어 발효시킨 술이 삼양주다. 삼양주 제조법으로 빚은 술은 색이 매우 맑고 맛이 진하면서 달지 않고 깊은 향을 지니고 있다. 삼양주 중에서 조선 후기 주당들의 입맛을 매료시킨 대표는 ‘삼해주’(약주)였다. 삼해주의 ‘해(亥)’는 날짜에 붙인 12간지 중 돼지날을 뜻한다.

삼해주는 서울특별시무형유산으로 지정돼 권희자씨가 전승하고 있다. 권씨의 시어머니 정을율씨(鄭乙栗, 1904∼1986)는 1982년 6월19일자 ‘중앙일보’에 “정월 첫 돼지날에 멥쌀 한되를 빻아 쌀가루를 만든다. 거기다 밀가루 한되를 섞어 끓인 물을 식혀 버무린다. 반죽이 완전히 식으면 누룩가루 한되를 섞어 독에 넣고 술을 안친다”고 삼해주 빚기의 출발을 밝혔다. 12일 후 두번째 돼지날이 되면 “멥쌀 한말을 빻아 반쯤 찐다. 거의 안친 술밑을 여기에 쏟아 함께 버무린다. 물은 끓여서 식혀 써야 하고”라며 이양주 빚는 법을 설명했다. 세번째 돼지날이면 “멥쌀 세말로 술밥을 찐다. 이 밥을 잘 찌느냐 못 찌느냐에 술맛이 좌우된다”고 하면서 “꼬들꼬들하게 찐 밥을 독 안에 넣고 두번 발효시킨 술밑을 함께 쏟아부어 끓여서 식힌 물 35사발을 붓고 버무려 독을 봉한 후 땅을 파고 묻는다”고 밝혔다. 정씨는 삼해주 주재료로 멥쌀만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찹쌀을 쓰면 삼해주가 쉬이 시어지므로 안된다는 것이 그가 시집와서 배운 규칙이다.

술 제조법을 적은 조선 후기 책에서 삼해주는 빠지지 않는다. 정씨 집안의 규칙과 달리 찹쌀로 빚는 제조법도 나온다. 조선 후기에 찹쌀은 매우 귀했다. 당시만 해도 구하기 어려웠던 밀의 기울로 만든 밀누룩으로 삼해주를 빚었다. 1734년(영조 10년) 음력 2월30일 이조참판 송진명은 “술을 많이 담그는 집에선 쌀 30∼40섬 내지 50∼60섬을 사용해 이름을 ‘삼해주’라 하고 반드시 정월에 빚는다”고 영조에게 보고했다. 당시의 멥쌀 단위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60섬이면 거의 2000말이 됐을 듯하다.

조선 후기 삼해주는 귀한 곡물을 잡아먹는 술로 여겨져 영조 때 강력히 시행된 금주령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대대로 서울에서 살며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집이나 그들의 뒷배경이 된 술집에서 빚은 삼해주는 금주령의 대상이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삼해주는 조선총독부의 주세령과 곡물 통제로 인해 주당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오직 경화세족 중 한 집안에서만 겨우 전승돼 오늘날에 이른다. 버들개지가 흩날릴 때가 곧 다가온다. 우리쌀로 삼해주를 빚자. 소비자는 좀 비싸도 맛있는 삼해주를 사서 음미하자. 그래야 우리쌀과 우리술이 더욱 빛난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음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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