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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푸드(K-Food·한국식품)’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연일 수출 새 기록을 써내고 있다. 그 이면엔 전통식품의 제조 기법을 묵묵히 고수하며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달인들이 자리한다. 올해로 지정 31년째인 ‘대한민국식품명인’을 차례로 만나 숨은 비법을 들어본다.
“청즙(淸汁)을 취해 솥에 넣고 불을 쐬며 젓기를 쉬지 않고 해야 한다.” 고문헌 ‘규합총서’에 나온 쌀조청 제조법이다. 이 책은 1809년 여성실학자인 빙허각 이씨가 펴낸 여성생활백과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와 유사한 기법을 계승·유지하는 곳이 있다.
전남 담양의 조성애씨(65)는 전통적인 직화·농축법을 고수하면서 ‘규합총서’에 나오는 방식과 흡사하게 쌀조청을 만든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조씨는 담양으로 시집오면서 쌀조청 제조법을 습득했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창평전통쌀엿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면서 20년 넘게 ‘창평쌀조청’을 제조하고 있다. 시할머니부터 시작한 쌀조청 제조 가업은 시부모를 거쳐 3대째 이어졌다.
조씨가 제조하는 쌀조청의 가장 큰 특징은 ‘아궁이’에 있다. 조씨는 엿기름으로 당화한 당화물을 졸여 조청을 만드는 과정에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2012년 기계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전통적인 색·맛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씨는 과감히 아궁이 방식으로 돌아갔다. 조씨가 쌀조청을 만드는 데는 수개월이 걸린다. 먼저 겉보리를 한두달 길러 1.5㎝로 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든다. 이 엿기름을 빻아 물에 푼 다음 고두밥에 섞는다. 그리고 60℃ 온도에서 9시간 발효하면 식혜가 완성된다. 이 식혜를 온도 1200∼1800℃를 유지하는 개량 아궁이에 안친 뒤 7시간 젓는다. 이 과정에서 식혜 온도를 가늠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조씨는 오로지 손의 감각에 의지해 온도를 맞춘다.
자부심을 더해 만든 쌀조청이지만 최근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힘이 빠질 때도 많다는 조씨. 그는 “코로나19 시절 급감한 쌀조청 매출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면서 “판매장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면에 있었던 까닭에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았지만 지금은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조청은 단순히 떡을 찍어 먹는 소스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고추장이나 파김치를 담글 때 사용하면 감칠맛이 두드러진다”면서 “쌀·보리로만 만든 쌀조청은 식이섬유와 미네랄이 함유된 건강한 당(糖)인 만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담양=정진수 기자 cur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