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노벨상, 카터의 노벨상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2-31

2009년 10월9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발표했다. 그해 1월20일 취임해 재임 기간이 채 9개월도 안 되는 오바마의 수상 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노벨상에 부합하는 업적을 쌓기엔 일한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 지구촌의 모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긴 것이 공적이라면 공적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노벨위원회의 섣부른 결정을 비판하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해 달라는 뜻으로 주는 상’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오바마의 임기 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름(크림)반도를 강탈했고, 북한은 핵무기 기술을 고도화하는 등 무력 증강에 성공했으니, 어쩌면 오바마는 노벨위원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다.

미국 현직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오바마가 처음이 아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년 재임)가 1906년, 우드로 윌슨(1913∼1921년 재임)이 1919년 각각 노벨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루스벨트는 1898년 쿠바 영유권을 놓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터졌을 때 참전해 큰 공을 세운 전쟁 영웅 출신이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고립주의에서 팽창주의으로 전환시켰다. 평소 “태평양 연안에서 미국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그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확고히 다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관심이 많아 러일전쟁(1904∼1905) 후 러시아와 일본 간의 포츠머스 강화 조약 체결을 중재했고, 이것이 훗날 노벨평화상 수상 사유가 되었다. 러일전쟁의 결과 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된 점, 루스벨트 임기 중 ‘일본의 한국 지배를 미국이 묵인한다’는 취지의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이 체결된 점 등을 감안하면 그의 노벨상 수상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반까지도 중립을 지킨 미국이 영국·프랑스 편에서 참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장본인이다. 뒤늦게 전쟁에 뛰어든 미군은 기진맥진한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대신해 독일군을 무찔렀고 결국 승리의 견인차가 되었다. 1차대전 종전 이듬해인 1919년 노벨위원회는 “국제연맹 창설과 유럽의 평화 정착에 기여했다”며 윌슨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전쟁 지도자가 평화상을 받은 것도 앞뒤가 안 맞지만 그보다 더 큰 아이러니는 국제연맹이 수상 사유에 포함된 점이다. 윌슨이 국제연맹 출범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나 정작 미국은 연방의회의 비준안 부결로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회원국에서 빠진 국제기구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국제연맹은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 등 강대국들의 횡포 앞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2차대전보다 훨씬 끔찍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터지며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가 깨졌다. ‘결과론’이란 지적을 들을 수도 있겠으나 윌슨이 과연 노벨상을 받을 만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29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1977∼1981년 재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현직 대통령 시절 상을 받은 루스벨트, 윌슨 그리고 오바마와 달리 카터는 퇴직 후 21년이 지난 2002년에야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실 정치적 의미에서 카터는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1979년 11월 터진 주(駐)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신속히 해결하지 못해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여기에다 1978∼197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제2차 석유파동(오일쇼크)으로 미국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1980년 11월 대선에서 카터는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참패하며 4년 단임 대통령으로 끝났다. 그런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카터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1982년 ‘카터 센터’를 세우고 봉사 활동에 나선 그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해비타트 프로젝트’(사랑의 집짓기)에 정열을 쏟아부었다.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평화 정착에 기여하고자 애썼다. 그에게 주어진 ‘늦깎이’ 노벨상은 대통령 퇴임 이후의 업적을 기린 것이었다. 같은 평화상 수상자이지만 오바마나 루스벨트, 윌슨보다 카터가 훨씬 더 위대해 보이는 이유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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