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진실된 말만을 해주소서

2025-01-0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습니다. 동해에는 티없이 맑은 새해가 떠오릅니다. ​

중국 역사에 전국시대라는 시기가 있었지요 그때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라는 두 책사가 활약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귀곡자(鬼谷子)로부터 설득하는 유세술을 배워 전국시대 일곱 개 나라가 치고받던 시대를 흔들었지요.

먼저 소진이 연(燕)ㆍ제(齊)ㆍ초(楚)ㆍ한(韓)ㆍ위(魏)ㆍ조(趙) 같은 여섯 나라의 합종책(合從策)으로 재상이 되었고 이에 대항해서 장의는 연맹을 맺는 연횡책(連橫策)으로 진(秦)의 재상에 올랐습니다. 두 세객(說客, 말솜씨 능란한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세 치 혓바닥이었고요.

장의가 어느 날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재상이 갖고 있던 당대 으뜸 보물인 ‘화씨의 벽(和氏之璧)’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며칠 동안 수 없이 매질을 당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목숨만 살아서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자신의 입을 벌리면서 “내 혀가 붙어있는가 보시오”라고 했답니다. 기가 막힌 아내가 퉁명스럽게 “내가 보니 혀는 그래도 붙어있는 것 같소”라고 대답하니 장의는 “그럼 됐소. 나에게는 혀만 있으면 괜찮소.” 하며 엷은 미소까지 짓더랍니다,

두 사람은 저마다 천하제패를 노리는 각국의 임금과 고관들에게 부국강병과 영토 확장 방안을 진언해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이후 소진은 조국 제나라에서 이중간첩죄로 수레에 온몸이 찢기는 거열형을 당했고, 장의도 말년에 진에서 밀려나 비참하게 삶을 마쳤습니다.

이탈리아 파도바라는 도시에 가면 성 안토니오 대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안에는 특별한 유물이 성체(聖體)로 보존돼 있는데 바로 13세기 초를 산 성인 안토니아의 혀(舌)입니다.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인 안토니오는 카톨릭 프란치스코 교단의 수도사가 되어 평소에 열심히 공부한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부드럽고 뛰어난 강설로 이름을 얻기 시작해 가는 곳마다 사람이 구름처럼 몰렸고 수많은 이단자가 회개하여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황금 혀’라 불렸다고 합니다.

다만 35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떴는데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일 년 뒤에 그를 성인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묻힌 지 30년 뒤에 시신을 발굴했는데 오직 혀만 썩지 않고 남아있었기에 교황청에서는 파도바의 성당에 이 혀를 성체로 안치하고 이 성당의 이름을 성 안토니오 대성당으로 해서 기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주위에서 말을 너무 잘하거나 온갖 방법으로 요리조리 말을 잘 돌리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은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것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성 안토니오의 혀는 수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삶을 인도했다는 점에서 가장 빛나는 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진과 장의 두 사람의 혀는 수많은 정복전쟁을 이용해 본인들의 영달을 하는 수단이자 도구가 되었기에 그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구업(口業)을 지어 삶을 실패한 사람으로 퍙가받을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말은 없을 수 없지요. 인간의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요. 다만 그 말이 옳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업(業)을 쌓는 일이니 나쁜 말로 일시적인 자신의 영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말로서 사람을 해치는 '말 폭탄'이 곳곳에서 터지는 때가 아닙니까? 온갖 거짓말이 넘쳐도 그것이 잘못인지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얻고 재화를 얻습니다. 공연히 영상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겠다고 멀쩡한 기업이 금융위기니 뭐니 해서 수천억의 피해를 주는 세상이고, 조그만 말 한마디를 가지고 주위를 선동해 자신들의 이권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처벌이 어렵기에 다들 남에게 말폭탄을 마구 던집니다. 도덕의 기준은 없어졌고 그렇게 해서라도 권력을 잡고 돈을 벌면 되는 세상이 된 것을 우리들이 실감합니다. ​

중국 후당 때 재상 풍도(馮道 882~954)는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에는 이러한 가르침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지난 한 해 살아오면서 실감하였기에 우리들은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씁쓸한 것이지요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글을 쓴다는 필자도 허구한 감언이설로 남을 비판하며 이래라 저래라 말했지만 되돌아보면 스스로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고 때때로 술을 많이 마시면서 구업을 지은 일만 허다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글쟁이로서 글로는 온갖 멋진 말을 다 하면서도 몸으로는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반성을 또 하게 됩니다. ​

이럴 때 성 안토니오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옳은 말을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감화시켰으면 그의 혀가 성체로 보존되고 있을까?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올 때 구자국의 왕자로서 출가해 금강경, 법화경, 부모은중경 등 수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구마라집 스님도 69살에 삶을 마감한 뒤에 화장했지만, 그의 혀가 사리로 남아 지금도 중국 서안의 초당사에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김지장 스님이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 가서 수도와 덕행으로 추앙을 받다가 죽은 뒤에 보니 그의 몸이 썩지를 않았기에 그분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믿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누구는 말로, 누구는 덕행과 수행으로 영원한 선을 쌓았는데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다시 반성을 해봅니다.

또 남의 이야기지만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직종에 있는 정치인들이여 제발 구업을 쌓지 말아주세요. 당신들의 혀로 남에게 해를 주는 언사를 뱉지 마시고, 올바른 말로 올바르게 행동하시고 자신들만이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한 말을 하고 그것이 실천되도록 해주세요. 우리들 삶이 힘든 것은 바로 우리 정치인들의 욕심과 아집과 갈등 때문이 아닌가요? 우리 일반인들이야 구업을 지어도 그렇게 영향이 없지만 정치인 당신들의 말과 행동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아시지요? ​

부디 새해에는 눈앞의 권력을 위해 온갖 언설로 죄를 덮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지 마세요. 우리 일반인들이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모처럼 힘들게 밝히는 이런 간절한 소망을 부디 잊지 말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세요. 정말로 구업을 쌓아 당신의 그 입이 당신을 해치는 도끼가 되고 당신뿐 아니라 당신들의 후손까지도 그 업보를 받지 않도록, 성 안토니오처럼 선한 아름다운 혀를 후세에 남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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