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착 100일차. 11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 기념일 앞에 한숨이 나왔다. 핼러윈이 끝난 지 언제라고 연이어 등장한 추수감사절부터 성탄절까지. 크고 작은 기념일은 기쁨 이전에 고독으로 닥쳤다. 밝아지는 마을 내 장식과 거리의 불빛은 어두운 내 마음과 무관했다. 나는 이 낯선 땅에서 환희를 나눌 가족도 연인도 없는 이방인이다.
우두커니 책상 의자에 앉아 과제 기한과 생필품 목록을 끄적였다. 미국의 축제 속에 내 몫의 어울림과 즐거움은 없기에, 나를 비껴가는 행사에 무감해지려 시선을 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축제 시간은 그들의 시간이지, 내 시간이 아니다. 무감해지자.’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어떤 즐거움도 듣지 않고자 되뇌었다. 이 큰 나라에 내 존재에 할당된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음이 무너질까봐.
그 무렵 미국인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는 추수감사절 식사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초대장에 따르면, 식사 자리 주최자인 지도교수님은 자신의 레즈비언 파트너, 그리고 자기 아버지와 딸 다 함께 모여 집에서 식사하기로 했다며 동석을 권했다.
이 초대장은 나를 비롯한 몇명의 외국인 신입생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이후 강의실에서 만난 그는 초대장의 취지를 덧붙였다. 연말 명절은 가족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도리어 가족이 아닌 주변인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연휴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비롯한 외국인 학생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고향의 이야기, 타지살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자신의 집에 놓인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아.
어릴 적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동네 친구끼리 나무로 지어진 미국 가정집 내 주방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노르스름한 조명 아래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이 나에게도 허락된다는 사실이 잠시간 와닿지 않았다. 타인과 쉬이 어울리기 어려운 장애가 있는 몸이자 다른 피부 색깔을 가진 아시아인으로서 미국적인 그 따뜻한 자리는 나에게 할당되지 않은 자리라고 끊임없이 되뇌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의 추수감사절 식사 자리 초대는 의례적인 연말 식사 풍경의 재현을 넘어, 스스로 미국 사회에 나타나고 말하고 느끼는 인격체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모두가 즐거울 때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자리. 거창하고 공허한 어휘처럼 느껴져 정치인을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좀처럼 활용하지 않는 다양성이라든가 사회 통합이라든가 하는 가치가 결국 누구나 환대하는 소박한 명절 식사의 풍경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연말과 연초가 다가오면 한국에서 지내는 유학생의 마음을 자연스레 살피게 된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찾아온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 몽골, 베트남,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지면상 이름을 담지 못한 나라에서 찾아온 유학생들. 나는 그들도 공허함을 메울 따뜻한 연말의 식탁에 초대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정이 담긴 연말 식사 풍경에 이방인을 위한 의자가 함께 놓일 수 있기를 조용히 또 절실히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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