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적 소재로 세계인 홀려
'월하의 공동묘지'부터 '파묘'까지 귀신의 힘
저승사자·처녀귀신, 세계로 뻗어나간 K-오컬트
서양 귀신보다 훨씬 강력한 스토리의 힘 가져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넷플릭스에서 마침내 역대 1위에 올랐다. 영화와 쇼 부문을 모두 포함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이 됐다. 누적 시청 수는 2억 6천 600만으로 집계돼 '오징어 게임 1'과 '웬즈데이 1'을 뛰어넘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쉽게 말하면 저승사자와 처녀귀신 이야기다. 그냥 한데 묶으면 한국의 귀신 이야기인 셈이다.

어린 시절, 마당 한가운데 모깃불을 피워 놓고 할머니한테 듣던 귀신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빨간 휴지나 파란 휴지를 들고 다니면서 밤똥 누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변소 귀신부터 할아버지가 밤새 싸워서 수문 기둥에 묶어 놓은 도깨비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다음 날 아침 가보니 도깨비 대신 몽당빗자루만 묶여 있었다는 황당한 '구라'였다. 그뿐 아니다. 옛날엔 갓 태어난 아기들이 온갖 이유로 세상과 작별했다. 동네 어귀에는 그 아기 무덤이 있었다. 엄마들이 그곳을 지날 때면 아기들이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밤마다 엄마들이 먹을 것을 싸 들고 가서 '아기 귀신'을 달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대중문화에서 풍성한 귀신 이야기가 많았다. 또 귀신 이야기가 '흥행 대박'을 낸 경우 또한 수두룩하다. 한국 귀신 흥행사의 맨 앞에는 1967년 극장에서 개봉된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은 호러물'로 꼽히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너무너무 무서워서 밤이 되면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恨)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의 복수극은 실감 나는 영상이 압권이었다. 청사초롱이 도깨비불처럼 날아다니고, 무덤 하나가 둘로 갈라지면서 관 하나가 솟아오른다. 그 관 속에서 머리 풀어 헤친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영화관이 인산인해를 이룬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TV 드라마로 사랑받은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는 귀신이 처녀귀신이었다. 한국의 귀신은 단순한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삶과 죽음, 억울함과 한, 정의와 복수 같은 인간적 정서를 담아내면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1996년 강제규 감독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도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타임슬립 기법을 써서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다. 학교 화장실에 출몰하는 귀신 이야기가 근간을 이루는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도 오랫동안 사랑받은 콘텐츠다. 여고생들의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왕따, 지나친 경쟁, 학교 교육의 부조리, 교사의 부도덕성을 고발하지만 근간은 귀신이다. 첫 편이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6편까지 이어졌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 드라마 '도깨비'도 한국의 귀신을 소재로 세계를 홀린 작품이었다.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인간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 그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기억 상실증 저승사자. 그런 그들 앞에 '도깨비 신부'라 주장하는 '죽었어야 할 운명'의 소녀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신비로운 낭만 설화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인 도깨비 김신 역, 도깨비 신부 역, 기억 상실증 저승사자 역은 각각 공유, 김고은, 이동욱이 맡았다. 김은숙 작가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으면서 높은 시청률과 OST의 히트로 이어진 드라마다. 지난해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 역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 퇴마, 오컬트 장르를 고집해 온 장재현의 세 번째 장편 영화지만 전작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은 한국적인 귀신 스토리에 집중한 결과였다.

여하튼 한국의 전통문화와 귀신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은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저승사자와 처녀귀신, 무당, 도깨비 같은 한국적 상징이 글로벌 팬들에게 사랑받는 건 우리의 옛날이야기가 갖는 스토리의 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한국의 귀신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 속에 확장돼 나갈 지 기대된다. 한국의 귀신이 어떤 서양 귀신보다 한 수 위라는 건 이미 증명됐으니 싸워서 이길 일만 남았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