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노인, 3D카메라 들었다…‘김일성 사진가’ 아들의 결심

2025-09-02

헬스+ 100세의 행복

“사라진 건 영화뿐만이 아니었어. 내 존재가 같이 지워지는 기분이었지.”

서울 충무로의 한 골목길에서 92세 촬영감독 전조명이 말했다. 1957년 개관한 뒤 반세기를 넘겨 2008년 폐관한 명보극장이 있던 자리였다.

1959년, 그가 처음 충무로에 발을 들였을 땐 거리가 살아 있었다. 땀과 웃음, 박수와 욕설이 뒤섞여 매일이 ‘현장’이었다.

혈기왕성했던 시절, 뒷골목에서 찌그러진 냄비에 담긴 우동 한 그릇 먹고 나와도 후배 앞에선 고기를 뜯은 척 이를 쑤시던 자타공인 충무로 터줏대감이었다.

‘약속’(1998년), ‘내 마음의 풍금’(1999년), ‘아홉살 인생’(2004년) 등 촬영한 작품만 140여 편, 1990년대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촬영상을 휩쓸었던 그였다.

그러나 그도 시대의 파도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충무로 거리엔 영화 관람객이 떠나고, 종이 인쇄소 기계음만 낮게 울릴 뿐이었다. 종이를 안 보는 시대엔 이 소리도 사라질 것이다.

100년 가까이 살고 보니 존재가 흔들리는 순간은 소리소문없이 찾아온다. 지하철역마다 있던 공중전화 부스는 자취를 감췄고, 밤마다 동네를 밝히던 VHS 비디오테이프와 DVD 대여점은 사라졌다. 남는 과일 한 개씩 덤으로 주던 동네 마트는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변화’라고 부르지만, 누군가에겐 ‘상실’이었다.

새로운 기술은 익숙한 습관을 밀어낸다. 저항하는 사이 세상은 더 빨리 변해있다. 어쩌면 나이 듦이란 익숙했던 세계가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이 아닐까.

목차

📌변해버린 세상 원망 대신, 그의 선택은

📌평균 나이 88세, 이들이 모이는 이유

📌추억만이 아니다, 은밀하게 공유하는 ‘이것’

📌틀린그림찾기, 그림 그리기…건강 습관

📌누구나 옛날 사람이 된다, 변화 마주하는 법

※〈100세의 행복〉지난 이야기 복습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호주서 새 여친과 사랑 빠졌다…‘105세 여행가’ 놀라운 치유

②한국 게이트볼 50년사 증인…94세 회장님 운전대 안 놓는 이유

③101세 엄마, 정신이 돌아왔다…80세 아들이 쓴 ‘달력 뒷면’

전조명에게 세월이란 청춘을 바쳤던 일이 사라지고, 나를 알아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일이었다. 자존심 하나로 살았으나, 뚝 끊긴 일거리 앞에서 자존심은 밥 먹여주지 못했다. 알 수 없는 후회와 우울감이 몰려왔다.

‘한때 선구자였는데 이제는 쫓아가기도 벅찬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구나.’ 시대의 파고 앞에서 시간이 두 동강 난 것처럼 과거에 갇힌듯했다.

업(業)의 자존심이 꺾이자 그는 사회적 죽음을 경험했다. 그의 나이80세,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다시 생기있게 살고 싶었다.

그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주섬주섬 꺼낸 건 3D 안경이었다. 이윽고 스마트폰을 열어 동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바로 2019년 86세의 나이에 3D 카메라로 찍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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