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통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들… 파미르 인 ①

2024-11-04

파미르고원에는 만남이 있다. 태초의 원시 자연과의 만남.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와의 만남.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파미르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과의 만남. -김상욱

1천300년 전, 서역과 파미르(구 페르시아어,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거쳐 인도로 들어간 혜초 스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에서 파미르에 대해 '차가운 눈더미가 얼어 있고, 땅이 갈라질 만큼 바람이 매섭게 분다'라고 묘사했다.

태양신은 구법승 혜초에게 자신의 자리를 쉽게 내주질 않았던 모양이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키르기스스탄의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주의 서부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파미르 고원은 천산·카라코람·힌두쿠시 산맥 등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봉준령들에 둘러싸여 있어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지금은 그때 보다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고 파미르 고원을 향해 가는 길은 지구상 10대 ‘데스로드’ 중 하나로 여겨질 만큼 험하다.

그러나 막상 파미르 고원에 도착하면, 한여름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설산과 맑은 계곡, 산중 호수,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그들에게 거리낌 없이 빵과 치즈를 내놓는 파미르인을 만날 수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파미르에서 발원한 강을 따라 발달했고, 카라반들은 이 오아시스 도시를 거점으로 동서양을 연결하면서 교역을 통해 부를 이루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파미르 고원이 국토의 절반인 나라 '타지키스탄'

파미르고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지키스탄은 2022년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이 최대 30일 동안 무비자 입국과 체류가 가능한 나라이다. 하지만 파미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파미르 퍼밋'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온라인 전자비자(e-Visa) 신청으로 가능하다.

타지크인은 이웃한 중앙아시아 ‘스탄 형제국’들과 달리 이란계 민족이다.

이들은 타지키스탄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우즈베키스탄의 일부 지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데, 페르시아어의 동부 방언인 타지크어나 다리어를 주로 사용한다. 온화한 반건조 기후부터 파미르 고원의 극지성 기후까지 다양한 기후 형태를 보임에 따라 전통적으로 오아시스 농경과 유목을 하며 삶을 꾸려왔다.

전통음식은 양고기와 당근채을 볶은 후 불린 쌀을 넣고 물을 맞춘 뒤 불 조절을 해가면서 만드는 ‘쁠롭’이라는 볶음밥이다. 밥이 다 되어갈 때쯤이면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건포도나 호두 등을 위에 얹기도 한다.

우즈벡 사람들은 최고의 '쁠롭'으로 사마르칸트 출신의 주방장이 만드는 '쁠롭'을 꼽는다. 그럴 때면, 타지크인들은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사마르칸트도 과거엔 타직인들의 땅이었다"고 한마디 한다. 즉, 세상 최고의 '쁠롭'은 타지크인들이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원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티지크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예전부터 이 땅에 살던 페르시아계와 북방에서 내려온 투르크인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형성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파미르 고원과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강을 따라서 발달한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에 주로 거주해 왔다. 그래서 자신을 타지크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신장에서부터 이란의 북부까지 의외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시절이었던 1936년, 현재의 국경선이 되어버린 ‘중앙아시아 지역 행정구역 확정안’과 ‘1민족 1국가 원칙’에 따라서 투르키스탄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 5개의 ‘스탄’ 공화국과 함께 각각 민족명을 부여받게 된다.

어쨌든 이로 인해 타지크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왔던 많은 이들이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시민으로 편입되었고, 소련 해체 후 독립 국가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우즈벡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조됨에 따라 이제는 타지크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타지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북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조상 때부터 생활해 오던 주 무대뿐만 아니라 역사까지도 이웃 국가 우즈베키스탄에 넘겨주고 자신들은 파미르 고원을 끼고 있는 일부 지역만을 기반으로 한 축소된 타지키스탄이 되어 버렸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1000만 여 명, 타지키스탄에 600만 여 명, 우즈베키스탄에 1000만 여 명(비공식적 추정)이 산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지크인은 공식적인 집계로는 200만 명 이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우즈베키스탄 내의 타지크인들은 부하라와 사마르칸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대부분 우즈베크인으로 등록돼 있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마르코폴로 처럼 떠나보자

‘파미르 퍼밋’을 받았다면 파미르를 관통하는 실크로드를 따라 몽골제국 원나라의 수도 대도(북경)까지 여행했던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처럼 파미르 여행을 떠나보자.

한국인들이 파미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을 경유해서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로 들어가는 방법과 키르기스스탄의 오쉬에서 파미르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두샨베를 출발점으로 삼든, 오쉬를 출발점으로 삼든 알마티 공항에서 다시 한번 항공 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오쉬에서 출발해서 파미르로 진입할 때는 사르타쉬 쯤에서 레닌봉 등의 만년설의 고봉들이 마치 병품처럼 우뚝 솟아 앞을 막고 있는 진풍경을 맛볼 수 있다. 여행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이제부터 파미르 고원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두샨베에서 출발할 경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여느 중앙아시아의 농촌과 비슷한 양 떼와 목동을 볼 수 있고 1시간 넘게 달리면 갑자기 길이 험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치 벌써 파미르 고원에 도착한 것이 아닌가 착각할 만한 풍광이 펼쳐진다.

아프카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을 이루는 빤지강을 따라 계곡과 낭떠러지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길을 따라 달리면 다음날에야 겨우 파미르 하이웨이의 출발점이자 종점인 ‘하록’ 마을에 도달하게 된다.

만수르 바자르는 야채와 과일 그리고 생필품을 파는 시장인데, 두샨베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파미르 여행을 떠나기 앞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에 제격이다. 이때 여행자들은 보통 현지에서 사용할 타지키스탄 심 카드를 구입하는데,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T-Cell의 심카드를 55소모니(타지크 화폐, 약 5달러 상당)를 주고 구입할 수 있다.

타직-아프칸 국경선 '빤지'강을 따라가다

파미르 하이웨이의 출발점이자 종점 도시 '하록'을 향해 출발.

자동차가 두샨베를 벗어난 지 한 시간쯤 달리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게 된다. 자동차 엔진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겨우 다 올라갔다 싶을 때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게 된다. 마주 오는 자동차가 겨우(정말 겨우) 비껴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도로인데다가 한쪽은 천 길 낭떠러지… 이런 길을 달려야 하니까 4륜 구동 차일지라도 하록까지는 약 12시간이 소요된다.

당일에 도착하기에는 힘들어 여행자들은 통상 '굴럅'이나 ‘칼라이훔’이라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이튿날 여정의 대부분은 아프카니스탄과의 국경을 이루는 빤지강을 따라 가면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94년간 이어졌던 영국과 러시아 간의 전략적 각축을 벌이던 그레이트 게임의 현장을 여행하게 된다.

그레이트 게임은 러시아와 영국이 작게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크게는 흑해 연안에서 극동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패권을 두고 벌어졌다.

중앙아시아로 남하해 인도양의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러시아와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남하를 저지하려는 영국은 바로 이 빤지강을 경계로 충돌했고 현재의 소련의 일부였던 타지키스탄과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아프카니스탄으로 나뉘게 됐다.

이 빤지강을 경계로 타지키스탄은 소련에 편입되고 그 남쪽은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1919년 독립을 하게 된다.

그래서 3천만 명을 약간 넘는 아프카니스탄 인구 중 타지크 민족이 38%를 차지하게 됐고 지금도 타지크 민족은 아프카니스탄에 많은 이산가족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의 한 빌미가 되기도 했다.

고대 페르시아제국과 이후 알렉산더대왕의 동방 원정 당시 그의 지배하에 들어갔던 아프카니스탄 지역은 간다라를 중심으로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걸친 대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이 지방의 그리스 문화와 불교문화가 결합하여 그 유명한 간다라 문명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여행자들은 빤지강을 따라가면서 도중에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기도 하고 오토바이나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파미르를 여행하는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아프칸 마약의 북상 루트

이 길을 가다 보면 군데군데 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의 장갑차가 눈에 띈다.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는 국경수비대와 경찰로부터 파미르 여행 허가증을 요구받게 된다. 이 지역은 타지키스탄 군인들 뿐만 아니라 테러리스트의 역내 유입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군대까지 지원 나와 있다.

사실은 이 지점에서 아프카니스탄 마약의 북상을 막지 못하면 구 소련 지역 전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마약이 수출되는 것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를 비롯한 CIS국가들이 극심한 정치 경제적 혼란에 빠져들자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된 마약이 바로 이 타지키스탄과의 국경을 거쳐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된다. 이는 타지키스탄 국내총생산의 30%가 마약 거래에 의해 창출되었다고 하는 UN의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대 마약 생산국인 아프가니스탄과의 지리적 접근성과 문화·민족적 친밀성 때문에 단속은 쉽지 않았고 더군다나 소련 붕괴 후 5년간 계속된 타지키스탄 내전으로 인해 가난한 타지크인들을 마약 산업이 유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도 시골이나 도시의 건설 현장 등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많은 타지크인들이 암암리에 녹색의 알갱이를 혀 밑에 넣고 몸에 쌓인 피곤을 풀곤 하는데 이것도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마약의 일종이기도 하다.

두샨베에서 '하록'에 도착할 때까지 군인들로부터 네댓 번의 검문을 받게 됨으로써, 이 지역이 아프간 마약의 대표적인 북상 루트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

다음 화에 계속...

[글=김상욱 고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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