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삶이 더 좋은 삶이다

2024-10-08

연구년을 맞아 해외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칼럼을 쓰게 됩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자녀들이 잘 적응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낯선 환경에서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외식 물가가 비싸고 한국처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멀어 주로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장을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미국 학교 숙제와 알림장, 아내가 한국에서 줌으로 등록한 학습지 수업 등 챙겨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제가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아내와 함께 나눠서 합니다. 저는 그 와중에 의과학자 연수지원 과제로 UCI에서 유니티 VR 개발자 과정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는 10주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매주 과제가 나오는데 비개발자인 저에게는 상당한 도전입니다. 언어 장벽으로 수업 콘텐츠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 한글로 쉽게 설명된 초보 교재를 e북으로 구매해 겨우 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푸념일 수도 있습니다. 선배 교수님들께서는 모두 연구년이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지만,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아 마음을 놓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이 현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과제를 해결하며 유니티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도 있습니다.

힘든 점에 초점을 맞추고 푸념하고 싶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책임지는 삶이 더 좋은 삶이다’라고 되뇌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우려고 노력하고, 교수로서 학생을 지도하며, 과제를 수행하고 논문을 내는 모든 일이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길이지만, 개업한 선생님들께서는 병원과 직원, 환자들을 책임져야 하는 더 큰 무게를 안고 계실 것입니다.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지 진료 방식과 환자 및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책임지는 삶이 더 좋은 것’이라는 말은 조던 피터슨의 저서 질서 너머의 4장에서 나옵니다. 그 책임은 현재와 미래의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포괄합니다. 책을 읽을지 고민되신다면 유튜브에서 김미경 작가가 리뷰한 콘텐츠를 보셔도 좋습니다. 사실 저도 책을 읽고 나서 이 유튜브를 봤는데, 그 해석이 더욱 깊게 와 닿았습니다. 김미경 작가는 젊은 시절 많은 고생을 했고, 지금도 계속 노력을 기울이며 살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래서 행복하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고되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책임 때문입니다. 다이하드 4.0의 맥클레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아이언맨, 그리고 명량의 이순신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임감이 행복감보다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미경 작가는 ‘책임지는 삶이 더 의미 있는 것’이라는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치과 경영 환경이 나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책임을 지고 병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들께 “그래서 행복하냐”고 묻기보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인정하실 수 있다면 오늘의 고된 마음에 다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병원을 운영하시는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직원으로서 맡은 책임을 다하는 선생님들께도 이 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꼭 편하고 실적과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는 책임이 삶에 의미를 준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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