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이름값' 못한다 … "Non Stable"

2025-07-02

'안정성' 이슈 여전

1:1 페깅 내세우지만 … 예금자보호나 중앙은행 보증 없어

한은 "코인런 위험 … 통화정책 약화"

테라 붕괴 반면교사 … 佛, 미국에 전액 金상환 요구하기도

[디지털포스트(PC사랑)=이백현 기자] 2022년 스테이블코인 ‘테라(UST)’ 붕괴는 시장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법정화폐 1달러에 가치를 고정하겠다던 스테이블코인이 일주일 만에 휴지조각이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테라의 시가총액은 450억 달러, 피해자 수는 수백만 명에 달했다

스테이블코인은 흔히 ‘디지털 달러’로 불린다. 가치가 고정된 암호화폐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법정화폐에 1:1로 연동(페깅)돼 있는 듯 보이지만, 그 구조는 안정적(Stable)이란 이름과 달리 투명하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치를 보장하는 방식은 과거 미국이 달러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시행했던 금본위제와 빼닯았다. 테라의 알고리즘 가치연동(페깅)이 실패한 이래, 대표적인 현행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나 USDC는 달러나 국채 등 실물 자산을 준비금으로 삼는다. 즉 원칙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코인에 해당하는 자산을 달러나 국채로 확보해야 하고, 고객이 요구하면 코인을 현금으로 반환해 줘야 한다.

이는 미국이 달러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달러에 해당하는 양의 금을 실제로 보유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미국이 달러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그에 해당하는 금을 보유하고 지급했던 것처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코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나 국채 등 준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달러-금’의 관계는 ‘스테이블코인-준비금(달러 또는 국채)’와 일치한다.

다만 역사를 보면 미국은 1960년대 복지지출 증액, 소련과의 냉전을 위한 군비 확충, 베트남 전쟁 자금 조달 등으로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냈고, 다른 국가들은 미국이 실제로 금 상환 능력을 가졌는지 의심했다. 당시 프랑스 정권이 보유 달러 전액에 대한 금 상환을 요구하자, 미국 닉슨 대통령은 1971년 달러와 금의 교환에 대한 전면 중단을 선언해 버렸다. 그 이후 금 1온스의 가격은 35달러(금본위 체제에서의 교환비율)에서 1,000달러 가량으로 치솟았다. 다르게 표현하면, 금 대비 미국 달러의 가치가 30분의 1로 하락한 것이다.

이에 ‘달러-금’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이, ‘스테이블코인-원화’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본위제와 스테이블코인이 다른 점은 신용을 보장하는 주체다. 다만 달러의 신용을 보장한 건 1960년 당시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이었지만, 스테이블코인의 신용을 보장하는 건 각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사라는 점이다.

또 국가통화와 달리, 금본위제의 금에 해당하는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되는지는 감시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 달러 기반 1위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오랫동안 준비금 부족 논란에 휩싸였다. 테더 발행사(Tether Limited)는 준비금 대부분이 미국 국채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만, 2021년 상업어음과 대출 담보 등 불확실한 자산을 담보로 활용했으며, 준비금을 100% 확보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뉴욕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바 있다.

2위 스테이블 코인 USDC(발행사 서클)는 미국 규제 당국과 협력하며 상대적으로 투명한 회계 보고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역시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디페깅(가치 이탈)을 경험했다. 준비금 중 일부가 해당 은행에 묶이면서 일시적으로 1 USDC의 가격이 0.87달러까지 떨어진 것이다.

‘1:1 페깅’이라는 말은 언제나 그 약속이 지켜진다는 전제 하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아직까지 ‘최종 지급 의무’를 지지 않는다. 예금자 보호나 중앙은행 보증이 없다는 의미다. 2025년 미 의회를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GENIUS Act)이 이를 제도화하려는 시도지만, 현재까지 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당국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이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외환시장 충격을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에 관한 신뢰가 훼손될 경우 디페깅(일대일 가치 연동이 깨지는 현상) 및 코인런(원화에 대한 대규모 상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앞서 프랑스 정권이 미국에게 보유 달러 전액에 대한 금 상환을 요구했다는 것과 동일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한은은 국가주도 통화정책을 펴는 주체로서 비은행권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통화정책 유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분명 기존 금융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했던 여러 기능을 갖췄다. 글로벌 실시간 결제, 저비용 송금, 디지털 금융 서비스 연동 등 혁신적 편의성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안정성’만큼은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다는 평가다.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준비금 5억원 이상 등의 요건만 충족하면 은행 뿐만 아니라 비은행권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네이버, 카카오, 스타벅스는 ‘네이버페이 포인트’,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 ‘카카오페이 포인트’를 발행하는 대가로 고객들에게 현금을 받는다. 이런 현금은 각각의 기업이 투자자금으로 운용해 금융수익을 올릴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위 사례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다른 점은 네이버페이 포인트는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정 이상 충전 시 준비금 예치 의무, 사용자 보호 규정이 있다는 점이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디페깅(가치연동 이탈) 시 피해 보상에 관련된 규정이 아직 제도화된 바 없다.

또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코인이 사용될 때마다 블록체인 상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또는 인프라 이용료를 일부를 가져간다. 자체 발행 플랫폼 또는 제휴 거래소를 통해 수수료 수익 확보할 수 있고, 유통량이 많을수록 수익 구조도 커진다.

더 중요한 것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사는 미국 등 규제당국과 법제화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USDC 발행사 서클(Circle)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미국 재무부 등에 직접 의견을 제출하거나, 자문 그룹으로 참여하고 있다.

즉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민간 기업은 단순한 토큰 발행자가 아니라, ‘통화 발행에 준하는 영향력과 수익 구조’를 가진 신종 사설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된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이름처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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