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세계경제의 주요 화두로 자리 잡은 가운데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AI를 통한 경제학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아울러 그는 현재로서는 ‘2% 물가 목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물가 목표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버냉키 전 의장은 전미경제학회(AEA) 마지막 날인 5일(현지 시간) “AI를 활용하면 경제학에도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복잡한 문제를 쉽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현실에 잘 맞는 경제학 모델이 머지않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I가 고소득 직업을 위협한다는 비관론과 세계경제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낙관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버냉키 전 의장이 경제학 연구에 AI가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그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봤다면 이해하겠지만 AI를 통해 훨씬 정교하고 정보의 흐름과 상호작용을 더욱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며 “AI는 경제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발언은 전미경제학회가 버냉키 전 의장의 경제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특별 헌정 세션에서 나왔다. 버냉키 전 의장은 2012년 연준 재임 당시 공식 도입한 ‘인플레이션 2% 목표제’와 관련한 질문에 “제도 도입은 연준의 독립성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며 “연준이 명확하게 목표를 설정해 놓으면 정치인들이 다른 통화정책을 요구하더라도 연준의 목표와 의사 결정을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에도 “연준의 독립성이 침해되면 인플레이션과 시장에 나쁜 일”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인플레이션 목표가 ‘0(제로)’로 낮아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2% 물가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목적 외에도 필요할 때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적절한 절충안”이라고 답해 일축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공공정책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경제학도의 질문에 “기존의 연구(paper)에서 무언가를 찾아 더하려 하지 말고 현실 세계(real world)에서 찾으라”며 “이론적인 성향이라 하더라도 현실에 몰입하라”고 조언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마지막까지 인플레이션을 놓고 뜨거운 논의가 펼쳐졌다. 올리버 포이티 텍사스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4%를 넘어가면 상승세가 가팔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포이티 교수는 “소비자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임계치가 존재하며 이는 4%”라며 “임계치를 초과하면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올라가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지고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초기 단계에서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포이티 교수는 “비둘기파 정책에서는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갖고 진입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더욱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매파적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억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