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2주 만에 관세를 무기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25% 보편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한 달의 유예를 주는 대신 미국 국경 강화에 멕시코와 캐나다가 돈과 인력을 투입하게 했다. 반면 중국에겐 예정대로 10% 관세를 발효했다. 중국과의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힘을 과시한 것이다. 중국도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발효키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간에 걸친 선전포고와 협상을 통해 미국이 힘의 우위를 통한 외교로 전환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 다음 타깃은 유럽연합(EU)이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트럼프식 충격과 압박 전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은 4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시행키로 했던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1개월간 유예했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국경에 군과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면서다.
멕시코는 멕시코-미국 국경에 1만명의 군병력을 즉시 보내기로 했다. 캐나다도 캐나다-미국 국경에 인력 1만명을 배치하고 13억달러를 투입키로 했다. 캐나다는 이에 더해 펜타닐 문제를 전담하는 '차르'를 임명하고, 마약 카르텔을 테러단체로 지정키로 했다.
국경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밝힌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에 펜타닐과 같은 마약류와 불법입국자 등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이 과정에서 관세를 무기로 양국에 국경 강화를 요구했었다.
중국에 대한 10% 관세는 4일부터 시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역시 펜타닐과 불법체류자의 근원지로 보고 있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오는 10일부터 미국 산 일부 상품에 1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석탄·LNG는 15% 관세를 부과한다. 또 구글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은 유럽연합(EU)도 압박하고 있다. 크게 3가지 이유를 들어서다. △미국 기업에 대한 과도한 과징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인상 △무역적자 등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에 대한 EU 과징금 등이 사실상 관세와 같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대해 “새로운 관세를 확실히(definitely)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비공식 회원국 정상회의를 갖고 미국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지체 없이 대응에 나서겠다고 결의했다. 다만 미국이 요구한 방위비 증액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대(對)미국 무역흑자국 6위이자,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을 요구받는 우리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적 보호 무역주의 기조도 재확인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은 사실상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갈취당해 왔다. 거의 모든 국가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라는 무기와 힘의 차이를 가지고 압박하는 트럼프식 외교가 기존 미국의 외교 방식과 달리 상대를 가리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결정하거나 언급한 멕시코와 캐나다, EU는 모두 미국의 핵심 우방국이다.
또 정상 간의 '톱다운' 형식으로 주요 외교 결정이 이뤄지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 유예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하고 결정한 일이다.
비상계엄과 탄핵사태에 따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우리나라로서는 대응책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혈맹'이라지만 트럼프식 딜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과 여전히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17년에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이 1월 20일에 취임해 막 1기 집권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과 1월 30일 통화한 것과 비교해도 늦다.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우리나라가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관세 표적이 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대응책을 제시할 정상 간 외교채널이 부재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오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시바 총리는 이번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에 대한 관세 확대를 피하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의 조차를 꺼내 들 것으로 보도됐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