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이라크 파병→하기 싫은 일→안 할 수 없나?’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의 구술을 받아쓴 메모다. 실제로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파병 결정을 내렸다. 심각한 내홍을 겪어야 했다. 국회에서 파병안이 통과되자 많은 노무현 지지자가 실망하고 대거 이탈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네”라는 말이 당시 그에게 개혁과 변화를 기대했던 진보 진영에서 한동안 회자됐다.
노무현으로서는 첫 번째 시련이자, 대통령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를 절감했던 일이었다. “대통령은 반미 하면 안 되느냐”는 결기를 보였던 노무현 아닌가. 그런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반미 아닌 친미의 결정을 요구받게 될 줄이야.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한국 군대 파병을 강력하게 요구해 온 것이다.
2003년 3월 20일 새벽, 미국을 위시한 영국·프랑스 등 다국적군은 후세인 제거를 목적으로 3000여 발의 미사일을 이라크 바그다드에 퍼부었다. 일각에선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벌이는 ‘더러운 침략 전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아무튼 이 전쟁에 참전할 것을 미국이 한국 정부에 요구해 온 것이다.
전쟁을 준비하던 미국은 이미 김대중 정부에 한국의 참전을 요청했고, 여기에 김대중도 대충 ‘미국에 협조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터져 파병 결정을 떠안은 것은 출범 한 달밖에 안 된 노무현의 참여정부였다.
미국의 공격 시작 일주일 전, 한밤중에 노무현은 미국 대통령 부시로부터 예정에 없던 전화를 받는다. 당선 직후 축하 전화에 이어 두 번째였다. 방미 초청과 북핵 문제 등 15분간의 통화였는데, 핵심은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 요구였다. 예상은 했으나 막상 당해 보니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재 타도니 민주화니 정의 구현만을 외쳐온 노무현으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외교’였으니 말이다. 내치를 펼치기도 전에 외치부터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선은 실무진이 준비해 준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