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재당선 이후, 소셜미디어에는 끝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수장이 미치는 영향력은 그 국가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생각보다 더 트럼프를 향해 쏠린 여론 앞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상당했다. 도대체 저런 사람을,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또 뽑았나? 민주당은 뭘 어떻게 했길래, 뭘 잘못했길래 저런 결과가 나왔나? 트럼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기후변화 대응 반대론자인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부 장관에 지명하는 등 자신의 정책에 발맞출 사람들을 빠르게 인선중이다.
세계는 어떻게 될까.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디로 가게 될까. 제발 별 일 없이 흘러가기를 기원하고는 있지만, 그런 바람이 저 강하고 먼 곳에 들릴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으로서,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의 지근거리에 살고 있다.
『피에 젖은 땅』(2021)에서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대신 공을 들여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바이든의 발언처럼 그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티머시 스나이더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상, 스탈린과 히틀러였고, 그 과정에서 그는 그 두 사람을 정당화하는 대신 역사적 희생자가 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끌어올렸다. 그는 이해를 시도한 이유를 이렇게 서술한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을 미화하거나 스스로와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일은 쉽다.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별로 매력이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더 중요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설령 그 작업이 답답하고 괴로울지라도.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