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유통업계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출점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GS리테일은 2027년까지 GS더프레시 1000호점 오픈 계획을 밝혔고, 롯데쇼핑은 올해부터 롯데슈퍼의 가맹 사업을 확대한다. 업계에서는 소형화된 SSM의 점포 수가 늘어남에 따라 편의점과의 갈등 양상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년 새 SSM 매장 수 4.6% 증가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주요 유통업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매출이 가장 많이 늘어난 오프라인 업태는 SSM(6.8%)이다. 대형마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신선식품을 갖춘 SSM은 주거밀집지역에 잇따라 출점하면서 매출 규모를 키우고 있다.
2023년 11월 1131개였던 SSM 점포 수는 1년 후 1184개로 4.6% 증가했다. 전체 오프라인 유통업체 중 가장 높은 점포 수 증가율이다. 대형마트, 백화점은 점포 수가 감소세로 들어섰고, 편의점도 시장 포화상태로 점포 수 증가율이 1%대에 머무른 것과 대조적이다.
SSM 업계 1위인 GS리테일은 지난해에만 GS더프레시 점포를 90개 이상 출점했다. 현재 GS더프레시 점포 수는 52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7월 정춘호 GS리테일 수퍼사업부 대표는 GS더프레시 500호점을 출점하며 “2027년까지 GS더프레시 1000점 시대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GS리테일이 편의점과 유사한 가맹 모델을 SSM에도 적용하고 있다. 초기 투자비용을 본사가 선부담하는 대신 매달 수익을 본사와 점주가 나누는 형태로 만들어 문턱을 낮춘 것”이라며 “하지만 이 모델을 운영해보면 가맹점주 손에 남는 이익이 매우 적다. 그런데도 창업 자금이 적다는 것에 혹해 슈퍼를 하겠다며 줄을 서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는 롯데쇼핑까지 SSM 가맹 사업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다. 롯데쇼핑은 2020년 오프라인 점포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500개 이상이던 롯데슈퍼 점포 수를 지난해 3분기 기준 356개까지 줄였다. 그중 직영점이 204개(슈퍼 176개, CS유통 28개)로 60%가량을 차지한다. 롯데쇼핑은 부실 점포 정리 작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올해부터는 롯데슈퍼의 가맹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가맹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가맹사업은 가맹점 투자비가 필요한 만큼 기존보다는 소형화된 매장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작년 연말 선보인 롯데슈퍼 하남망월점과 유사한 형태의 매장이 신규 포맷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경기도 하남시에 문을 연 롯데슈퍼 하남망월점은 약 50평 규모 소형 매장으로 신선식품과 델리 코너를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1분기 중 신규 가맹 모델 점포를 확정해 선보일 예정으로 하남망월점은 이를 위한 테스트 매장이다. 전반적 상권이나 실적 등을 검토한 뒤 신규 점포를 개점할 계획이다. 아마 (하남망월점과) 비슷하게 갈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동일 업종으로 분류 안 돼 보호 못 받아
SSM의 공격적 출점에 한숨이 깊어지는 것은 편의점 가맹점주들이다. SSM이 가맹 사업 확대를 위해 매장을 소형화하고 주거밀집지역에 출점을 시도하다 보니 기존에 운영 중이던 편의점과 근접 출점이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주들은 매장 인근에 SSM이 들어서며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하소연이다.
최근 문을 연 롯데슈퍼 하남망월점 바로 옆의 편의점도 매출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A 씨는 “원래 올리브영이 있던 자리에 롯데슈퍼가 들어섰다. 편의점 사장은 바로 옆에 슈퍼가 들어온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슈퍼 오픈 후 매출이 줄어 힘들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SSM이다. 한 편의점주는 “이전에는 인근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이 들어올까 걱정이 많았다. 이제는 가장 무서운 게 슈퍼(SSM)다. 편의점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거의 그대로 취급하는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니 매출 타격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편의점주도 “바로 옆에 SSM이 들어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손님이 얘기해줘 알게 됐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자리라 평소 매출이 높은 편도 아니었는데, 옆에 슈퍼까지 들어오면서 매출이 많이 줄었다. 이제는 정말 담뱃가게에 불과하다”고 푸념했다.
GS리테일의 경우 GS더프레시 출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GS25 가맹점주들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GS25가 운영 중인 상권 내에 GS더프레시를 추가 출점하면서,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한 GS25 가맹점주는 “인근에 GS더프레시가 들어온 후 매출이 크게 줄었다. GS더프레시는 2주에 한 번 휴무하는데, 그날은 편의점 매출이 전주 대비 40% 이상 늘어난다. GS더프레시에 그만큼 매출을 뺏기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본사에 문제 제기도 해봤지만, 책임이 없다고 한다. 매출 하락에 대해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았다. 공정위에 GS더프레시 근접 출점 문제를 신고했지만, 편의점과 SSM은 동일 업종으로 볼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맹본부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가맹 계약기간 중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 안에서 가맹점사업자와 동일한 업종의 자기 또는 계열회사의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설치하는 행위는 가맹사업법 위반 사유로 판단된다. 하지만 편의점과 SSM은 동일 업종으로 분류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판매 상품의 전체가 아닌 일부가 같고 영업시간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롯데쇼핑까지 SSM 가맹 사업 확대를 예고한 만큼 SSM과 편의점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롯데 계열사인 코리아세븐이 운영하는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롯데슈퍼가 동일 상권에 출점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기잠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편의점과 SSM의 상품 구색을 최대한 겹치지 않게 조정하면서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잠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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