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미소가있는치과Ⓡ 송선헌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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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의 ‘고로’는 매번 혼밥을 한다.
그는 일을 끝내고, 허기져 음식점을 찾고, 메뉴를 고르고, 맛있게 먹고 떠나는데 그 많은 음식을 다 먹는 식신(食神)? 연출을 의심? 전날 굶는단다.
이젠 우리도 맛집 탐방, 식탐 먹방들이 우후죽순처럼...
당신도 미식가(美食家)인가요?, 여기서 ‘미’는 味(맛 미)가 아닌 ‘맛있다’란 美다.
미각이 예민한 미식가 궈메이(Gourmet)는 포도주 감식가(Wine connoisseur)였었다.
최강, 꼴통 미식가는 최빈국 콩고의 모부투로 생일 케이크를 콩코드로 배달했었다.
교산 허균(1569~1618)은 산 채로 살을 회 뜨는 능지처참(凌遲處斬)이 아닌 사지와 머리를 묶은 밧줄을 다섯 마리 소로 당겨 찢어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을 당하고 20세기 초에 용인에 가묘를 만든 그는 불행한 결혼 생활로 26살에 죽은 허난설헌의 동생이고 그 때문에 초당두부를 개발한 아버지 허엽도 연좌제로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는데 한명회도 당한 조선의 마지막 부관참시 즉 육시(戮屍, 시체를 죽이는)랄을 당한 이는 김옥균, 교산은 조선 팔도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던 미식가였었다.
요정 대원각(길상사)을 시주한 길상화(吉祥華)의 연인인 시인 백석도 미식가였었다.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저녁이고, 대장장이 아들 춘다가 공양한 돼지고기? 또는 단나무 버섯?이 부다의 마지막 음식이었다.
평화주의자 스콧 니어링은 백세(1983) 때 곡기를 스스로 끊고 죽음을 맞이했었다.
과거 나의 맛집 투어는 소설 ‘장군의 아들’을 쓴 백파 홍성유를 따라 간 것들이었다.
TV에 나온 맛집들을 다 믿을 수는 없는데 아내의 여고시절 옥천 풍미당도 내 고향 황간의 덕성관도 방송을 타더니 줄을 서게 됐다.
가족 넷이 있을 땐 한정식을 만나러 맛의 고장 전라도로 갔었지만 점점 성원이 부족해 대안으로 ‘농가맛집’을 찾는데 11월이 되어야 개시하는 원미면옥의 짬뽕을 기다리는 아내도 있고, 나는 촌놈답게 세동의 들깨칼국수를 좋아한다.
우리는 모두 고독한 미식가들이다.
그 고독은 바람처럼 외롭다.
그래서 “혼밥하지 말라”는 말이 어느 경(經)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갈수록... 그야말로 식구(食口)가 그립다.
전화해서, 주방장 특선의 오마카세는 비싸니 푸근한 ‘이모카세’라도 할려?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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