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문학
김진영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리나』의 톨스토이냐, 『죄와 벌』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도스토옙스키냐. 다른 나라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두 러시아 작가에 대한 취향 선호도가 큰 관심거리였다. 성장기 필독서로 소년과 청춘의 인생스승 역할을 한 톨스토이는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본격적인 예술과 사색의 모델로 추앙받아 왔다. 전문가 영역인 문화예술계가 꼽은 거장은 언제나 도스토옙스키였다. 그런데 2017년 한국에서 갑자기 불기 시작한 『안나 카레리나』 열풍은 톨스토이 쪽으로 잠시 풍향을 틀어 놓았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과 교수가 펴낸 『광장의 문학』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고르키와 오스트롭스키, ‘최후의 농촌 시인’을 자처한 예세닌 등 러시아 작가와 문학이 한국에서 어떻게 읽히고 받아들여졌는지를 디테일하게 분석한 책이다. 최남선이 톨스토이 우화를 처음 소개한 1909년부터 러시아문학은 개인을 넘어 시대가 읽고 집단이 감동한 ‘광장에 속한 문학’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반도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러시아문학은 특히 북한 체제 구축 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남쪽에서 눈에 띄게 재조명된 것은 1980년대 이른바 운동권시대였다.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전범으로 손꼽히는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80년대 중반 번역 출간됐다. 공장 노동자를 거쳐 볼셰비키 붉은 군대 군인으로 내전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강철 같은 작가로 부활하는 이야기다. 고르키의 『어머니』 또한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피어 나는 동안 소련 사회주의 체제는 80년대 말 종말을 고했다. 소련이 무너지자 좌표도 사라졌다. 하지만 러시아와 그 문학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대중의 광장’에서나 ‘개인의 밀실’에서나 여전히 크다. 한국 격변기마다 러시아문학 독법은 정치 지형에 따라 이분법으로 나누어지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생명력이 강해 시대와 관계없이 고전으로 길이 사랑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