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날벼락과도 같았던 비상계엄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고, 이로 인한 국민적 충격과 상처는 쉽사리 치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와 선관위에 군대를 투입하고, 정당한 법 집행을 거부하며 관저로 들어가 중무장이 가능한 경호처를 방패 삼아 결전을 불사했던 모습은 전쟁 그 자체를 연상케 했다. 애석한 것은 전쟁 상대가 다름 아닌 ‘국민’이요 ‘헌정질서’라는 점이다. 지난 2년 반의 임기 내내 불통과 독선으로 일관해온 대통령이라지만 그 끝이 이렇게까지 잔인하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불법·위헌적인 비상계엄으로 종지부를 찍은 정권의 불통과 독선은 사실 우리 사회 곳곳을 이미 병들게 하고 있었다. 그 피해를 가장 크게 보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농업이다. 윤정부 취임 이후 우리 농업은 파괴되고 농민은 말살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은 국민의 먹거리와 생명을 책임지는 기간산업으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 수립과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윤정부는 농업을 철저히 방치했다.
지난해 유례없이 잦은 비와 고온, 폭우로 인해 농작물이 썩고 잠기며 가축이 죽어나가는데도 정부는 이에 상응하는 실효적 대책을 내놓은 것이 없다. 역대급 쌀값 폭락에도 찔끔 대책만 내놓아 쌀값을 더욱 떨어뜨리더니, 2024년산 수확기 쌀값마저 지난해에 비해 9%가량 주저앉게 만들며 무능·무책임의 극치를 보였다. 심지어 물가 폭등의 책임을 농산물에 떠넘기며 수입농산물을 무분별하게 들여와, 국내 농업생산기반을 파괴하는 결정타를 날렸다.
무능하면 귀라도 열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농업에 닥친 기후재난의 피해를 줄이고, 농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농업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양곡관리법, 농안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등‘농업민생 4법’을 추진했지만, 정부는 국회의 입법권 무시로 일관했다. 필자는 22대 국회 들어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농업민생 4법 추진에 깊게 관여했던 사람 중 하나로, 의정 활동 속에서 이 정부의 불통과 독선을 뼈져리게 경험했다.
농업민생 4법은 이미 21대부터 논의되어 온 법안이다. 양곡관리법의 경우, 정부에 수년간 논의와 협의를 요구가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성의 있는 대안이나 중재안을 제시한 적 없이 농민단체와의 합의 부족 등을 핑계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더구나 함께 본회의를 통과한 한우산업지원법의 경우, 정부도 모든 내용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법 제정이 아닌 축산법 개정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철저한 독선이고 입법권 무시다.
22대에 들어와 법안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고자 정부의 재량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안으로 개선하고 수차례의 협의를 통해 농민단체와의 합의도 이끌어냈지만, 이번에는 ‘농업을 망치는 농망법’이라는 막말을 쏟아내며 여론을 호도하고 여야합의를 운운하더니 권한대행 체제에서마저 거부권을 행사하게 만들었다. 기후 재난 피해, 농산물 수급불안, 농업소득 감소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입법 필요성도 공감한다고 하면서 대안 마련은 극구 거부하는 농식품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는 불통과 독선의 끝은 파멸이고 어리석은 국가 리더가 벌인 무모한 정치 도박의 대가는 5100만 국민이 장기 할부로 갚게 된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 현재 농업·농촌의 위기는 절박하다 못해 처절한 수준이다. 정부가 끝내 농망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야당과 농업계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원택 의원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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