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예산 증액·감액 프로세스 전혀 몰라…예산삭감, 비상계엄 요건 될 수 없어”

2025-01-14

尹,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예산삭감 거론

헌법상 계엄 요건 “전시·사변, 국가비상사태“

전문가, 예산삭감 때문에 비상계엄 ‘어불성설’

“尹, 예산안 협상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본격화하면서 주요 쟁점인 ‘계엄선포 정당성’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무위원 탄핵’과 함께 ‘예산 삭감’ 등을 배경으로 거론했다. 이 중 예산 삭감의 경우 예비비 삭감 등을 예산폭거로 규정, 국가 재정이 농락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회 심의를 통해 정부 예산안이 감액됐다가 증액되는 통상의 과정을 윤 대통령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서, ‘예산삭감’은 헌법상 비상계엄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4일 헌재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주심을 맡은 정형식 재판관은 지난 변론준비기일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실체적 쟁점 중 하나로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 행위’를 꼽았다. 헌법 제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이 요건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문(지난달 3일)과 대국민 담화(지난달 12일)를 통해 ‘재해예비비 1조원 삭감’, ‘특수활동비 0원’ 등 각종 예산 삭감을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한 바 있다.

하지만 예산당국과 재정 전문가 사이에선 “예산삭감은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직전 상황을 보면 정부·여당과 야당 간 협상 기류도 뚜렷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초유의 감액예산안을 상정하려 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강조하는 등 협상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1일 “지역화폐는 가장 복합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인데, 저희에겐 삭감할 권한 밖에 없다”고 말해 지역화폐 증액을 위한 지렛대로 감액 예산안이 활용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야당이 주장하는 지역화폐 사업을 어느 수준까지 받고, 대신 정부안에서 감액된 부분을 어떻게 협상을 통해 늘릴지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예산 관련 정부·여당과 야당 간의 줄다리기 협상이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윤 대통령이 이를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무리하게 규정한 채 비상계엄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아울러 야당이 삭감한 규모도 4조1000억원으로 총지출(예산안 기준·677조4000억원)의 0.6% 수준이었고, 이 중 약 70%는 예비비(2조4000억원)와 국고채 이자상환액(5000억원)으로 구성돼 향후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통해 메울 수 있는 여지도 충분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은 통상적인 국회 예산 확정 시점도 아니었다.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를 골자로 한 국회선진화법이 실시된 2014년 이후 국회의 예산 확정 시점을 보면 2015년·2016년·2020년·2021년은 12월2~3일에 처리됐다. 하지만 12월8·10일(2017~2019년), 12월21·23일(2022~2023년) 등 12월 중하순에 처리된 경우도 많았다.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 내에서도 대통령이 예산 삭감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도 야당의 예산삭감을 탓하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서 감액 및 증액을 통해 예산으로 확정된다”면서 “여야가 협상하는 과정에서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 정치 관행인데, 대통령은 이런 정치 관행을 전혀 몰라서 혹은 예산안 협상 과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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