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곳곳 밤새 대규모 약탈…뉴욕 등 23곳서도 “노 트럼프”

2025-06-11

10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대표적 명소로 꼽히는 6번가 ‘보석거리’ 곳곳에 유리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상점 문은 뜯겨져 나가 나무판자로 막아놨고, 진열대는 텅 비었다. 난장판이 된 거리의 랜드마크 애플숍엔 ‘당분간 영업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걸렸다.

LA 도심에서 이어지고 있는 반(反)이민 정책 시위 진압에 경찰력이 집중된 것을 틈타 전날 밤 벌어진 대규모 약탈의 현장이다.

급하게 고용한 사설 경비원과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보안 강화 방안을 논의하던 보석점주 셰킬 모션은 “약탈자들이 몰려와 상점을 부수고 물건을 깡그리 가져갔다”며 “밤새 재산이 약탈당하는 걸 CCTV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못 하는 미친 상황에 화가 난다”고 했다. 경찰은 뭘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시위 진압 때문에 끔찍한 약탈이 자행되는데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며 “LA에선 비슷한 약탈이 반복되기 때문에 점주 입장에선 사설 경호 요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보석거리의 상점 대부분은 이날 문을 닫았고, 점주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사설 경호원이 지키는 가운데 쇼윈도에 판자를 덧대고 있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찰리 시즌은 “밤새 오토바이 소음과 유리 깨지는 소리로 한숨도 못 잤다”며 “정신 나간 약탈자들의 행동을 불합리한 이민 정책에 대응하는 시위대가 한 짓으로 보게 될까 봐 오히려 걱정”이라고 했다. 셔멀 멜라니도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흑인과 백인·라티노·아시안 등 모두가 함께 뭉쳐야 하는데, 위기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닷새째를 맞은 대규모 시위 와중에 LA에서 약탈 등 범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위대를 ‘짐승’에 비유하며 공격 수위를 더 높였다. 그는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 육군 기지인 포트 브래그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외국 국기를 든 폭도들이 우리나라를 침공하고 있다”며 “LA는 통제되지 않은 이민 때문에 썩어버린 오물 구덩이가 됐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군병력 투입에 대해서도 “내가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LA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라며 “그들은 골칫덩이·선동꾼·반란자들에게 돈을 지불했고, 의도적으로 범죄자들이 도시를 점령하는 걸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치안 불안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가 거세지자 이날 시위대는 그간 대치를 벌여 온 연방 건물 앞 집회 대신 가두 행진을 거쳐 인근 공원에 모여 평화 집회를 열었다.

캐런 배스 LA 시장도 이날 “전날 밤 23개 사업장이 약탈당했다”며 “반달리즘(공공시설 파괴)과 약탈을 막기 위해 통행금지령을 발령한다”고 밝혔다.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통행이 금지되는 지역은 공공기관이 위치한 시내 1제곱마일(약 2.6㎢)이다.

통행금지령 발령 직후 개빈 뉴섬 주지사는 TV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장악하고 주방위군 4000명과 해병대 700명을 소집해 불타기 쉬운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가 첫 번째일지 몰라도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은 다른 주들로 확대될 것이고, 그 이후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LA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시카고·라스베이거스·오스틴·애틀랜타·뉴욕 등 최소 24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고, 뉴욕에서도 맨해튼 트럼프 타워 주변에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다 최소 9명이 체포됐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소속의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지사는 질서 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주방위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애벗 주지사는 이날 X(옛 트위터)에 “평화적인 시위는 합법이지만 사람이나 재산을 해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체포될 수 있다”며 “텍사스 주방위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집행기관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인 오는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 육군 창립 250주년 기념 열병식을 계기로 시위가 보다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14일 100여 개 시민단체가 미 전역에서 개최하는 ‘노 킹스(트럼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시위에 수백만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강태화([email protected])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