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2024-10-19

“우리 아이는 성품도 착하고 순한 편이라서 설마 그 유명한 중2병을 거칠까 했거든요. 그런데 드디어 말로만 듣던 ‘문 쾅!’과 함께, 대발작, 소발작을 차례로 겪고 말았네요. 얘가 정말... 내가 아는 내 아이가 맞나?”

“애기처럼 항상 내 품을 파고들던 애였는데, 가까이만 다가가도 문 닫고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요. 자존심도 상하고, 배신감도 느끼고. 자식은 배신 당하기 위해 키운다는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렇지.”

올해도 어김없이, 새롭게 중2가 된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입니다. 북한에서 쳐들어오지 못하는 게 무서운 중2들 때문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건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 때문이겠죠?

부모님이 알고 있던 사랑스럽고 귀여운 우리 아이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화 과정을 겪을 때 사람들은 중2병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이름이 어디에서 왔나 했더니, 1999년 일본의 개그맨이 라디오 방송에서 “중학교 2학년생이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이 있다” 며 이야기한 게 시초였다고 합니다. 처음 쓰일 때부터 웃음과 비웃음을 뒤섞은 표현인 셈이죠. 일종의 멸칭이기도 해서, 여기서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중2병’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합니다. 이 ‘병’의 특징은 감정/ 정서의 과잉과 반항입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표현을 국어 선생님에게 처음 듣던 중학생 시절이 떠오르네요.

뭔 소리인지도 잘 모르는데 다들 배꼽을 잡고 웃어서, 선생님이 “그것 봐, 선생님 말이 맞지?” 하셨던 기억까지 새록새록 납니다. 이런 건 정서의 과잉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시인이 아닌 사람이 시를 쓴다면 그 사람은 중학생일 거라는 이야기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반항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증상입니다. 항상 무언가에 화난 사람처럼 부루퉁하고 있거나,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면서 대듭니다. 여태까지 고분고분하던 성격이었든, 아니면 원래도 삐딱한 면이 있었든 가리지 않고 반항기가 올라옵니다.

“내 자식인데도 그 속을 모르겠으니, 머릿속이라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까요?”

역시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로부터 받았던 질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아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바로 뇌과학을 통한 접근이지요. 갓난아기들의 뇌는 아주 작습니다. 아기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면 뇌 역시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그런데 뇌의 크기만 커지는 게 아니라 뇌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의 배열 자체가 천지개벽 만큼이나 달라지는 게 아기에서 어린이, 청소년을 지나 어른으로 넘어가는 과정 가운데 나타납니다.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 장면을 떠올려 보면 좋습니다. 나무의 가지치기를 본 적 있으시죠? 쑹덩쑹덩 잘려 나가는 가지들, 남은 나무들은 앙상하니 정말 볼품없고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1차 가지치기는 0세부터 만3세 사이에 나타납니다. 이때는 운동과 언어 기능의 발달에 주안점을 두고 가지치기가 진행되지요. 그래서 이 시기에 어린이들이 말을 배우고, 기다가 걷고, 마침내 뛰기까지 하는 변화를 보입니다. 이후 뇌는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다가, 10대가 되면서 2차 가지치기에 들어갑니다. 이때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곳은 전두엽인데, 주안점은 사회성, 고위 인지 기능, 충동 조절 등입니다. 소위 ‘인간답다’고 말하는 기능의 대부분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가 이때입니다.

전두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전두엽의 역할을 좀 더 들여다보고 가도록 하죠.

아래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김붕년 교수님의 저서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전두엽의 주요 역할은 5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이해력 : 자신이 처한 상태, 분위기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감정 조절 : 분노, 시기심, 충동 등 부정적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며 바로 위에 소개한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발달하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계획 및 문제 해결 능력 :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면서 여러 변수를 예측하고, 그에 맞게 적절히 수정해 나가는 능력입니다.

-충동 조절과 주의집중력 조절 : 공부할 때 중요한 능력이죠? 집중해서 사고하면 몰입과 창의력도 함께 발달합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 : 선택과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예측하고 준비합니다.

자, 이렇게 중요한 5가지 역할 모두가 흔들리는 시기가 도래하였으니 이름 하여 10대, 그중에서도 중2! 전두엽의 가지치기는 10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30대 초반까지 지속되는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입니다만, 10대 초반에 가지치기의 50% 정도가 일어난다고 하니 이때의 변화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하겠지요.

위에서 소개한 5가지 능력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10대 초반, 어떤 모습을 보일지 상상해 보시겠어요?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져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부터 못합니다.

-감정 조절이 안됩니다. 어떻게 보면 감정 조절을 하고 싶지도 않아 보입니다. 분노 폭발, 유치한 질투, 마구잡이 충동이 들썩거립니다.

-계획 및 문제 해결 능력이 작동하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참 안타깝죠. 가장 미래를 생각해야 할 시점에 가장 그 힘이 약하다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조금은 이해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밝은 조명이 필요해서, 더 밝은 조명으로 교체하는 동안에는 빛이 비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랍니다.

-충동 조절과 주의집중력 조절을 잘 못합니다. 가뜩이나 충동이 치밀고 올라오는 때에 주의집중력도 떨어지다 보니 문제가 많습니다. 만일 ADHD처럼 충동과 주의집중력 조절에 문제가 있는 병까지 가지고 있는 10대라면 스스로 생각할 때에도 한숨이 나올지 모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자기가 이런 선택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할 때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니까, ‘흑역사’라고 불리는 인생의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이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변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이 티를 벗으면서 부정적인 정서 그 자체로 수렴되는 것 같은 청소년들을 본다면 “흠,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구나!”로 반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행이라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뒤 (제발 너무 심한 시행착오만은 피해 주기를...) 가지치기가 마침내 끝난다는 점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10대들은, 다시금 부모님과 세상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청년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시기를 먼저 지나던 내가 가장 바랐던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10대 시기의 내가 많이 하던 말들이요. 그건 “날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가 아닐까요?

밤낮으로 출렁거리는 감정과 정서의 홍수, 사회로부터의 압력과 또래들의 자극 가운데 이미 잔뜩 뒤흔들려 어지러워하고 있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가만히 두는 것”을 바란답니다. 물론 위험 가운데 뛰어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자는 건 아니지요.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대처해야 하는 것들이 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주변의 자세는 “아이들을 기다려 주자, 스스로 균형 잡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리 저리 흔들리다가 자신만의 안정 지점을 발견하면서 서서히 혼란의 시기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들도 그랬잖아요, 그러니 혼란의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조금의 여유와 시간을 주면서 기다려 주는 용기를 내보길 기대합니다. 10대 청소년 아이들은 자신만의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는 그 힘을 기대하며, 아이들을 이해하면 제일 좋겠지만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이 시기가 끝난다는 것이라도 믿으면서 오늘을 견뎌 주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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