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95화. 리플레이

2025-11-30

게임을 리셋하듯,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바쁜 가운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게 쏜살같다는 말을 실감하며, ‘내가 잘해 왔는지’를 떠올리죠. 잘한 일도 있겠지만, 마음속에 남는 것은 항상 ‘그때 이랬으면 하는 후회’입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1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게임을 다시 시작하듯,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이를 회귀물이라고 해요.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면 루프물이 되죠.

켄 그림우드의 소설 『리플레이(Replay)』는 오랜 역사를 가진 회귀물·루프물을 독특하게 해석한 작품으로 1988년에 나와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줬어요. 우리는 주인공 제프 윈스턴의 인생을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면서 세이브-로드가 가능한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제프는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국 디렉터지만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고, 집도 별로고 아이도 없었죠. 무엇보다도 아내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 그러던 그가 갑자기 죽어버렸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화 너머에서 울리는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그는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그것도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의 기숙사 침대였죠. 1963년, 자그마치 25년 전의 젊은 자신으로 돌아간 겁니다. 그것도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지식을 가진 채. 이 사실을 깨달은 제프는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살 거야.” 그래서 일단 돈을 벌기로 하죠. 온갖 회귀물의 주인공들처럼. 그에게는 이후 25년간 일어날 여러 일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큰 경기에서 어떤 팀이 이기는지, 어떤 회사가 성공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순식간에 그는 부자가 되어 인생을 즐겨요.

이번에 결혼한 상대와도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딸과의 시간은 행복했죠. 하지만, 첫 번째 인생에서 죽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 이번 생에 그가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는 다시 죽음을 맞이하여 25년 전으로 돌아갔어요. 부귀영화를 비롯한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갔지만, 무엇보다도 상처를 준 것은 사랑하는 딸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였죠. 그렇게 몇 번의 인생을 다시 살아가며, 매번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의 마음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았어요.

또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회귀하는 기간이 점차 짧아지는 거였죠. 과거로 돌아갈수록 그 시점은 점차 늦어졌어요. 처음에는 몇 시간, 이윽고 몇 년으로 바뀌면서 죽을 때까지의 남은 시간은 점차 짧아졌죠. ‘알고 있는 역사’의 길이가 줄어들면서 주인공 일행이 뭔가 할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마지막에는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죠. 그리고...마지막 순간, 죽었던 주인공은 다시 깨어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대화야.” 전화기에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첫 번째 인생, 루프가 일어나기 전의 그 시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루프에서 빠져나온 겁니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실패했다고 여긴 인생도 아내와의 불편한 상황도, 그가 살아온 몇 번의 루프는 그의 인생을 더 좋게 만들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인공은 깨닫습니다. 무의미하다고 여긴 경험이 자기 내면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다음번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바로 지금 이번만이 유일한 기회이자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내게는 한정된 시간이 있을 뿐. 어떤 순간도 가볍게 넘기면 안 된다.’ 무한해 보이던, 하지만 항상 허무한 결과만을 낳았던 루프 경험이 조금은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죠.

12월이 되면, 항상 후회하곤 합니다. ‘그 순간 내가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다면’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생각해요. 하지만 다음 해 12월이 되면 여전히 후회를 거듭합니다. 그것이 사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죠. 회귀물과 루프물은 이 같은 바람에서 탄생하여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누구든 후회 없는 삶을 산 사람은 없으니까요. 보통 이런 이야기 주인공은 몇 번이고 인생을 반복하며 결국 ‘인생에 성공’하면서 루프에서 벗어납니다. 그의 실패는 없었던 것이 되고, 그 자신에게서도 잊히겠죠. 성공 이외에는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서. 하지만 『리플레이』는 말합니다. 실패라고 여긴 인생의 경험, 그 자체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과정이라고. 루프는 그의 삶을 바꾸지 못했지만, 그 경험들이 그의 마음을 조금씩 성장시켰다고 말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지금 눈앞의 가능성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40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더 다가오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대화야.” 루프에서 벗어나는 순간, 주인공이 들은 말. 이것은 그의 루프에 막을 내리는 동시에 그에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피해 왔던 일. 바로 아내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말이죠. 12월. 한 해의 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홀했던 순간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진심을 나누는 일일 것입니다. 친구에게, 부모님께, 그리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다음 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한걸음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꿀지 모릅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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