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과 인천·대구 등 6대 광역시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30%를 밑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당이 가계대출 확대를 통한 지방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7월로 예정돼 있는 3단계 DSR 적용 범위의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방의 경우 지금도 대출 한도에 여유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DSR 규제 완화가 서울시의 섣부른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맞물려 시장에 잘못된 신호만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지역별 주담대 평균 DSR’ 현황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에서 지난해 6대 광역시 소재 주택을 담보로 신규 대출을 받은 이들의 평균 DSR은 28.83%로 집계됐다.
DSR은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현재 당국은 DSR이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은 규제 비율보다 11.17%포인트나 낮다. DSR이 40% 근처라면 DSR 완화가 대출 여력 증가로 이어져 미분양 해소에 기여할 수 있지만 현재는 지방에 집을 사려는 수요 자체가 미미하다. 울산의 경우 평균 DSR이 27.65%에 그쳤고 비율이 가장 높은 광주 역시 29.88%에 불과했다.
금융계에서는 지역 DSR 완화는 극도로 제한된 지역의 투기 수요를 부추기고 국민들에게 3단계 DSR도 후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 당국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토지거래허가제에 이은 또 한 번의 가계대출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출 자금이 말라 지방 미분양이 발생한 게 아니다”라며 “공사비가 늘면서 분양가가 과도하게 올라 생긴 문제인데 대출을 풀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앞서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4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DSR 한시적 완화를 관계부처에 촉구했다”면서 “금융위원회가 면밀히 검토할 것을 약속했다”고 발언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미분양 사태가 심각한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출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취지에서다.
반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을 포함해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금융 당국 인사들은 “규제 완화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가계대출 관리를 총괄하는 당국의 입장을 배재한 채 정책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당국 내에서는 여당의 주장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책 상품처럼 DSR 규제를 받지 않는 대출을 활용하면 지금도 주택 구매 자금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의견 또한 있다.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의 경우 각각 6억 원, 4억 원 이하 주택 구입자를 대상으로 2% 수준의 저리 대출을 제공한다. 차주 입장에서 보면 DSR 규제를 받는 은행 상품이 아니더라도 정책 상품을 통해 충분한 수준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것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미분양 주택이 가장 많은 대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4일 기준 3억 4160만 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이 대출 규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방 건설사의 표심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지방에 매매 수요 자체가 없는데 대출을 풀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지방 건설사를 중심으로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정치권이 이에 보조를 맞춘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실효성이 없는데도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했다가 자칫 시장의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DSR 규제를 흔들지 않겠다고 수차례 밝혀온 당국이 말을 바꾸면 ‘정부가 부동산 상승세를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시그널로 시장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실제 당국이 지난해 7월로 예정된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돌연 두 달이나 연기하면서 대출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쏟아지기도 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에 한 번 돈이 풀리면 지역별로 자금 유출입을 관리하기 쉽지 않다”면서 “지방에 돈을 풀면 수도권으로 돈이 흐르면서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