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해 공정’에 숨은 노림수

2025-05-11

한국의 어업 지도선이 지난 2022년 3월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서 중국이 설치한 석유시추선 형태의 해상 철골 구조물을 발견했다. 중국이 2018년 직경 70m, 높이 71m의 선란(深藍)-1호를 설치한 지 4년 만이었다. 지난해 5월에는 선란-2호를 설치했고, 최근엔 선박을 고정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로써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설치한 중국 시설물은 3개로 늘어났다.

한국 서해를 중국이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 공정’이라는 의심과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내세우지만, 이런 노력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주권이 명확하지 않은 영토 분쟁 지역에서 실효적 지배가 선행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7년 전부터 불법 구조물 3개 설치

어업협정 위반, 영유권 야심 보여

외교로 풀되 비례적 대응도 필요

실효적 지배가 현실 정치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사례는 많고, 국제법에 근거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측이 영토 주권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 열도 분쟁이 좋은 사례다. 러시아는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들 도서를 실효적으로 지배 중이다. 국제법을 내세운 일본은 러시아가 불법으로 점령한 2개 도서의 영유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해왔다.

법으로 판결·강제할 기관이 국제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영유권이 불분명한 영토 주권에 대해서는 선제 조치가 실질적 결과를 결정한다. 이것이 영토 분쟁의 속성이다. 이 때문에 해상 경계선이 획정되지 않은 서해에서 중국의 ‘불법’ 구조물 설치 행위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중국이 실효적 지배를 통해 향후 있을 한·중 해상 경계선 획정 담판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속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 방안은 외교적 해결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중국이 이웃 나라들과 벌인 영토 분쟁 사례를 보면 외교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된 적이 거의 없다. 중국이 분쟁 지역에서 국경선 획정에 성공한 사례는 북한·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러시아 등 대부분 공산권 국가다. 1960년대 중국이 남중국해의 11개 단선 중 2개 단선을 베트남에 ‘선물’로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분쟁과 갈등을 외교적으로 푸는 것은 상식적이지만, 영토 주권 문제에서 국제법과 규범·원칙이 잘 통하지 않는 나라를 상대로 외교적 접근법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이번 서해 구조물 설치가 한·중 어업협정을 명백히 위반했는데도 중국 외교부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중국 해양협력 대표단은 이들 구조물이 양식용이며 국내법과 국제법에 부합하고, 한·중 어업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어도에 설치된 한국의 해양과학기지 시설을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세운 불법 시설물이라 주장했다.

중국의 서해 공정은 한·중 어업협정에 위배된다. 2000년 8월에 체결한 이 협정 제3조 1항은 조업 구역 및 기타 조업 조건을 매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상대방에 대한 통보 의무가 있다. 제7조 2항은 ‘해양생물자원의 보존과 합리적 이용을 위하여 한·중 어업공동위원회에 따라 공동 보존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협정이 정의하지 않은 규정과 법칙은 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정해야 하는데 중국은 이번에 사전 통보도 양해도 없었다.

중국의 서해공정에는 최후 방어선인 제1 도련선에 속한 한국 서해와 하늘에 대한 제해권과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정치·군사적 의도가 숨어 있다. 1986년 중국 해군의 해양작전 전략 개념과 2016년 중국 해군 학술지에서도 이런 의도가 읽힌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지만, 북한 핵 문제에서 보듯 국제 규범·절차·원칙을 무시해온 사례가 많다. 서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중국의 무리한 주장과 요구에 일본·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북한이 물리력으로 맞대응해 분쟁이 잠잠해진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일본 해경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할 때 미국은 일본을 지지했다. 2023~2024년 필리핀이 세컨드 토머스 암초를 강제 점령하자 중국이 무력 대응했는데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지지했다. 외교적 해결 시도가 먹히지 않으면 미국의 지지를 받아 한국도 비례적인 맞대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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