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배터리 2025, '이차전지 배터리의 모든 것'
최주선 삼성SDI 사장 "변하지 않는 것은 기술력"
전기차 화재 막는 '열전파 차단 기술' 공개
현대차그룹과 로봇·자율주행차 기술 협업
"46파이 양산 임박, 전고체 배터리 3년 내 출시"

3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 현장에서 삼성SDI가 전기차 캐즘을 돌파하기 위한 모범답안을 내놨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는 5일 인터배터리 도어스테핑에서 "배터리 시장의 경영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이사가 말한 기술력은 부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SDI는 '배터리 기술로 업그레이드되는 우리의 일상, 인셀리전트 라이프(InCelligent Life)'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부스를 꾸몄다. 작은 드릴 공구, 잔디깎이, 오토바이, 서비스 로봇, 20피트 컨테이너까지 들고나온 삼성SDI의 부스는 기술의 향연이었다.
배터리 폼팩터 다변화와 커스터마이징, 열확산 대응책 등 최근 이차전지 시장 기술의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계산한 모습이었다. 더불어 ESS용 배터리 시장, 서비스 로봇과 자율 주행차용 배터리 등 성장 수요 대응 방안까지 모두 내놨다.

삼성SDI 관계자는 "전기차에 어떤 폼팩터가 적합한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각형이 답이다"라고 답했다. 근거로는 완벽한 육각형 그래프를 꽉 채운 스펙과 독자적 기술을 제시했다. 육각형 스펙의 각 꼭지점에는 안전성, 에너지, 출력·충전, 냉각, 시스템, 디자인 등이 평가 요소로 들어간다.
삼성SDI 관계자는 "구조적 안정성을 갖췄다는 점, 극판 길이가 짧아 리튬 거리를 단축할 수 있다는 점 등, 각형 배터리는 전기차용 폼팩터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크기와 두께, 배치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 효율성도 높은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각형 배터리는 삼성SDI의 자존심이다. 국내 유일의 제조사인 데다 프리미엄 제품군을 안정적으로 생산·판매 해왔던 만큼, 노하우와 제조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 기술은 6세대(P6)까지 와있다. 2008년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진출한 이후 각형 배터리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는데, 지난해 1월 양산을 시작한 P6 제품은 에너지 밀도 650Wh/L, 주행 가능 거리 최대 620km, 급속 충전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최근 전기차 주행 거리가 500km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길게 보장해 주는 셈이다.
각형 배터리의 매출 기여도 상당하다. 삼성SDI 관계자는 "각형 배터리는 중대형 전지사업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제품"이라고 귀띔했다.
해외 증설 계획에도 필요한 핵심 제품이다. 현재 삼성SDI는 헝가리 배터리 공장 준공을 완료하고 미국 스텔란티스 JV1(2025년)·2공장(2027년)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장들의 전략 기종도 각형 배터리로, 곧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폭스바겐이 2030년까지 자사 전기차의 80%에 각형 통합 배터리셀을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SDI의 수혜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파우치형이 주력 제품이었다. 해외 업체 중 삼성SDI처럼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는 중국 CATL과 스웨덴 노스볼트 등으로, 시장 내 게임 플레이어도 한정적이다.

삼성SDI는 이번 전시에서 각형 배터리를 활용한 열전파 차단(No Thermal Propagation, No TP') 기술을 선보였다. 지난달 상품화 적용 검토를 마친 제품인 만큼, 외부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열전파 차단 기술은 배터리 제품의 특성 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셀 사이에 적용한 안전 소재를 통해 다른 셀로 열이 전파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아준다. 삼성SDI의 열전파 차단 각형 배터리는 하부 냉각판, 가스배출 장치, 단열재, 과충전 방지 장치, 단락 차단 장치, 특수 소화시스템이 장착돼 타 배터리보다 안정성이 높다.
삼성SDI는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ASB)'도 소개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한 제품이다. 내용물 구성이 변경되기 때문에 배터리 무게는 200kg 줄일 수 있고, 출력밀도는 kg당 10W/kg까지 향상할 수 있다. 주행 거리는 더 늘어나고 폭발 위험은 적어지는 장점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원구원은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 규모가 연평균 34.2%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2027년 약 6160억원 규모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망한 시장인 데 반해 기술적 난도가 높다 보니 아직 양산에 성공한 기업은 세계적으로 단 한 곳도 없다. 낮은 이온 전도도, 높은 내부저항, 배터리를 충전하는 과정에서 리튬 금속이 나뭇가지처럼 성장해 단락을 일으키는 리튬 덴드라이트(Lithium Dendrite) 극복 등이 관건이다.
국내에선 양산 시점을 앞당겨 전망하고 있는 삼성SDI의 개발 노력이 가장 희망적이다. 일본의 토요타(2027년)와 비슷하고, LG에너지솔루션(2030년)에 비해서는 3년이나 앞섰다.
삼성SDI는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1회 충전으로 800km 이상 주행 가능하고, 1000회 이상 충·방전할 수 있는 전고체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샘플 생산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는 다수 고객사와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협의하고 있는 단계다.
삼성SDI 관계자는 "차세대 배터리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오고 있다"며 "파일럿 단계 다음인 마더팩토리(울산공장) 생산은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원통형 배터리 시장도 놓치지 않을 계획이다. 서비스 로봇과 자율 주행차 등에서 대형 고객사와 공동 협력을 약속한 데다 최근 전기차용 폼팩터가 다양해지면서 제품 포트폴리오에 변화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이번 전시에서 21700 규격의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의 서비스 로봇 달이(DAL-e)와 모베드(MobED), 그리고 자율주행 셔틀 '로이(ROY)'를 선보였다. 로이에는 4천여 개의 21700 배터리셀이 꽂혔다. 최고 속도는 40km/h로, 200km까지 내달릴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든든한 수요도 확보했다. 삼성SDI는 지난달 25일 현대차그룹과 로봇용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김영훈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팀장은 "모바일 로봇들은 로봇의 운영 환경에 맞는 배터리 탑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제품 설계 시) 삼성SDI의 제품처럼 높은 에너지 밀도, 출력을 가진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자 상무는 "자율주행 자동차는 센서와 전자 제어시스템 등 전장 부품이 많이 들어간다"며 "삼성SDI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긴 수명, 안정성으로 자율주행 시스템의 요구를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현재 로봇 산업 분야에는 전용 배터리 개념이 없다. 산업 현장에 쓰이는 로봇에는 전동 공구나 전기이동 수단(LEV)에 쓰이는 배터리가 장착되는 실정이다. 협소한 공간에 작은 셀을 맞춰 넣어야 하기 때문에 원통형 배터리 선호도가 높다. 이처럼 로봇용 배터리의 형상이 원형으로 굳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SDI는 21700을 시작으로 기술적 진보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4680 배터리 양산 소식도 알렸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는 “배터리 고객사를 확보해 이미 샘플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4680 배터리는 기존 21700 배터리 대비 에너지 용량은 5배, 출력은 6배 개선한 제품이다. 성능만으로 전기차 주행 거리를 약 20%까지 늘릴 수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SDI의 4680 배터리 양산 배경에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있다고 분석한다. 완성차 업체들이 최근 차종에 따라 적합한 배터리 유형을 채택하면서, 배터리 폼팩터별 장단점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BMW는 전기차 모델에 각형 배터리를 적용해 왔지만, 신형 '노이어 클라쎄'에는 46파이 배터리를 고른 바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삼성SDI는 차세대 전력용 ESS 배터리 'SBB 1.5'도 들고 나왔다. SBB는 20피트(ft) 컨테이너에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셀과 모듈, 랙 등을 설치한 제품으로 전력망에 연결만 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SBB 1.5'는 기존 제품 대비 에너지 밀도가 37%가량 향상돼 총 5.26MWh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SBB 1.5에는 화재 예방, 열확산 방지를 위해 EDI(Enhanced Direct Injection, 모듈내장형 직분사) 기술이 적용됐다. EDI 기술은 SBB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해당 셀을 포함하는 모듈에 소화약제를 분사해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첨단 기술이다.
ESS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는 이유는 미래 투자에 가깝다. 신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와 AI 시대 가속화로 ESS 시장 확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수주 성과도 큰 편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미국 최대 전력회사인 넥스트에라에너지의 1조원 규모 ESS배터리(SBB) 납품권을 따내기도 했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부진 속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ESS용 배터리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재생에너지 증가율은 현재 각국 정부의 2030년 목표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마켓앤마켓은 세계 AI 시장 규모가 2022년 869억달러(약 125조원)에서 연평균 36.2%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2027년까지 4070억달러(약 588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당시 추가적인 ESS 생산설비 증설 및 북미 현지 생산 거점 확보 계획을 예고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