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와 함께 연주하는 효모라니
양조장 황토방에는 김광석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커다란 통에 가득 담긴 효모, 거짓말처럼 기포들이 일어나며 춤을 춘다. 언뜻 보면 춤을 추는 것도 같고 말을 건네는 느낌이 든다. 보고 있노라니 신기하기 짝이 없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하루만 지나도 그 소리가 더 요란해진단다.

완주 소양 송광사 초입에 음악을 들려주며 우리 막걸리를 만드는 업체가 있다. ‘눈부신 자연愛’. 음악을 들려주어 와인 맛을 부드럽게 한다거나 젖소의 생산량을 늘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를 막걸리에 도입했다는 이야기는 또 처음 듣는다. 어떤 음악을 들려주기에 이렇게 효모균들이 신나서 노래를 할까 궁금해졌다.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눈으로 직접 보니 경이롭다. 이곳 황토방에서는 24시간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는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클래식, 가요, 트로트, 국악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막걸리에게 틀어준다. 하루 단위로 새로운 장르가 바뀐다. 이렇게 해온 지 무려 10년이다.
이런 정성을 기울인 막걸리라니 그 맛이 더욱 궁금해진다. 여러 논문에서 검증된 바 있듯이 음악을 들려줬을 때 효모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정성을 들인 만큼 제품의 품질에도 확실한 효과가 난다. 이곳 막걸리의 특징은 청량감이 있고 목 넘김이 부드러우며 뒷맛이 개운하다는 점이다. 술 마신 후 숙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영농법인에서 막거리 대표가 되기까지
영농법인 활동을 하다가 운명처럼 막걸리 공장 대표가 된 사나이. 자다가도 막걸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이 번쩍 떠진다는 ‘눈부신 자연愛’ 전성수 대표가 막걸리 제조에 뛰어든 지도 10년을 훌쩍 넘겼다.
다른 술과 달리 쌀과 밀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막걸리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건강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천둥소리’, ‘전주오목대’, ‘누룩꽃향기’, ‘천상천하’ 등 5가지이다. 여기에 OEM 형태로 개발한 제품까지 더하면 10가지를 훌쩍 넘는다.

대표 상품인 ‘천둥소리’가 괄괄하고 거친 남성의 맛을 대변한다면 ‘누룩꽃향기’는 좀 더 부드럽고 순하다. 더군다나 ‘누룩꽃향기’는 찹쌀을 재료로 삼았기 때문에 막걸리 제조 공정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품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제품이다. 전 대표 개인으로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이라고 한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정성을 들인 제품이 사랑받았을 때 뿌듯함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쓴 만큼 매출로 이어지지 않아 이 제품을 보면 서운한 점도 없지 않다.

‘눈부신 자연愛’에서는 최근에는 생강을 베이스로 한 ‘시앙’이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완주의 정체성을 대표하기 위해 완주의 대표적인 명물인 봉동의 생강에 착안한 제품이다.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고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아쉬운 점은 전량 서울로 출고되기 때문에 전북에서는 맛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행히 조만간 전주 꽃심호텔 중식당에서 선보일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모든 먹거리가 그렇듯이, 막걸리 생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원료를 사용하느냐이다. 이곳 막걸리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청정지역 완주의 재료를 사용하고 180m 암반수의 물을 사용함으로써 최상의 막걸리를 제조한다는 점이다. 자연에서 온 신선한 재료, 정직한 양조법(고두밥),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술을 만들고 싶은 게 <눈부신 자연愛>의 진심이다.
양조장 터를 잡은 마수길 자체가 물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최근 들어 지하수 문제로 암반수와 생수를 함께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품의 품질만큼은 자신이 있다. 까다로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힘, ‘천둥소리’ 막걸리가 전국 품평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유이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막걸리를 꿈꾸며
전 대표의 꿈은 새만금에서 생산한 밀을 기반으로 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특산품 브랜드로서 차별화된 프리미엄 막걸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막걸리는 싼 술이고 허접하다는 불명예를 씻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막걸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그 첫걸음으로 현재 완주군에서 주관하는 ‘눈부신 발효 체험 프로그램’을 본사에서 직접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면 유산균이 풍부하여 과음하지 않는다면 건강에 기여하는 술이라는 막걸리의 숨겨진 이면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나아가 주말 단위로 주말반 형태로 가족 단위 체험객을 모집하거나 술지게미를 활용하여 추억의 힐링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전 대표는 늘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 완주를 대표할 수 있는, 그리고 전라북도 나아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술 빚는 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꿈일 것이다.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술, 그리고 지역 문화와 정체성을 담은 그런 제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은 게 대표의 뜻이다.
‘눈부신 자연愛’ 식구들은 막걸리를 통해 일반인의 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막걸리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특별한 날 떠올리는, 그리고 추억을 간직한 술이자 독특한 문화 상품으로 한국인과 세계인 모두 막걸리를 기억하게 하고 싶은 게 전 대표 바람이다. 전통 막걸리의 맛과 운치를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음식이자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밥상처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도 그 이유이다.
한류를 대변하는 막걸리 문화콘텐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막걸리는 여전히 우리 서민들의 기호식품이자 한국인이 사랑하는 술로서 그 위치를 돈독히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 지긋한 중년 이상이라면 막걸리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요즘 전 대표는 현재 공장 한편에 위치한 홍보관에서 예술인들과 함께하는 ‘막걸리 미식 페어’, ‘전통음식 워크숍’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구상 중이다. 우리의 전통 판소리, 가야금, 해금 등과 어우러지는 막걸리 한 상이야말로 어쩌면 완주에서 맛볼 수 있는 호사스러운 상찬이 될 것이다. 전 대표는 이곳이 완주의 막걸리 명소를 넘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찾고자 하는 그런 완주의 랜드마크로 떠올려지기를 희망한다.
막걸리가 다른 음식과 어우러질 때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완주의 먹거리를 맛보면서 공연까지 즐길 수 있는 토털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판소리, 가야금, 해금 등의 국악 형태가 곁들여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술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눈부신 자연愛’에서는 지역 인재 채용과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에 기부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뿐만 아니라 마을 행사나 노인정 기부활동, 마을 주민 대상 체험 행사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과의 상생이야말로 회사의 존재 이유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 기업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걸리,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즐기는 문화로
사실 막걸리는 생산만이 아니라 유통면에서도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우선 발효주이기 때문에 냉장 보관을 해야 하고 유통과정 중에서 오염이나 변질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양질의 재료 수급도 보통 문제는 아니다. 전 대표가 양조장을 인수한 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엄선된 재료였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좋은 원재료를 쓰면 좋은 상품으로 이어질 테고, 소비자 역시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제품 개발도 소홀할 수 없다. 최근에 역점을 두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 ‘시앙’의 경우에도 좀 더 매력적으로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두 달여에 걸친 저온 발효, 그리고 20일간의 저온숙성 과정을 거친 프리미엄 제품 ‘시앙’을 개발함으로써 신제품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올해는 완주 군청과 협력하여 완주 딸기를 사용한 '딸기 막걸리'를 출시하였는데 소비자의 반응이 뜨거웠다.

좋은 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꿈과 신념,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선물처럼 온다. ‘눈부신 자연愛’ 사람들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반가운 얼굴들과 어울려 막걸리 한 잔을 마셨을 때의 그 행복감, 슬프고 힘든 이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 줄 수 있는 그 따뜻함을 담은 막걸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막걸리, 최근에 회사에서 MZ세대를 위한 ‘막걸리 클래스’, ‘캠핑 & 전통주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0년여 세월 동안 그의 손을 거친 막걸리들은 그에게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곡식이었고 과일이었다. 모두가 그 마음을 다 알아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는 이들이 있어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 아직도 지역 업체로서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홍보와 마케팅, 그리고 신상품 개발 등 군이나 도에서 충분한 지원이 뒤따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눈부신 자연愛’를 만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막걸리의 추억처럼 지금,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 곁에서 함께 웃고 울고 행복해하는 시간이 막걸리와 함께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도 앞으로 우리 지역을 대표할 만한 술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천둥소리’건 ‘누룩꽃향기’나 ‘시앙’이건 간에.
글 = 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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