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령이 남긴 의외의 선물

2025-04-08

2025년 4월 4일, 지인들과 함께 달콤한 휴가를 보내던 중 탄핵 선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인들이 탄핵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터라, 혹시 어색한 분위기가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몰래 기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인 한 분이 먼저 “같이 들어보자”며 선고 청취를 제안하였고, 덕분에 우리는 실시간으로 선고를 들으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실망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환호하였습니다.

계엄 선포부터 탄핵 선고까지, 입장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느 자리에서든 탄핵은 늘 주요한 화제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석에서 먼저 탄핵 이야기를 꺼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변호사로 일을 하면 할수록, 뉴스로 접하는 사건의 내용과 현장에서 증거 자료를 직접 확인하며 파악하는 사건의 본질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고,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되도록 제 의견을 먼저 밝히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해 왔습니다.

여러 모임에 나가 보면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지역색 때문에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데 소극적인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소신 있게 말씀하시던 분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속마음을 쉽게 알기 어려웠던 분들까지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그 변화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자라 법을 전공한 가족이 저와 이렇게까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본능적인 반감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점은 참으로 반가운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전북 지역은 한때 대체로 비슷한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견해가 생겨났음에도 이를 쉽게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이어져 왔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주변 지인이나 지역 신문을 통해 세상을 접했지만, 이제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 존재하던 모든 스펙트럼의 의견들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주장도 여과 없이 표출되었지만, 오히려 그 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다채로운 생각들이 표현의 자유를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소통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듯합니다. 물론 알고리즘이 갖는 편향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이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계엄령이 계몽령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꼭 틀린 말만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헌법 아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며, 다름은 결코 틀림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정치적 견해는 갈릴 수 있지만, 다름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게 만듭니다. 다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탄핵 선고 이후에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겠지만, 그 여정 속에서 전북이 무지갯빛으로 빛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지역색 없이 더욱 성숙한 사회로 발전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도 오늘 누군가의 ‘다름’을 마주친다면 한 번쯤 반겨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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