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메가톤급 불씨가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어서다. 상법 개정안 얘기다.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상법 개정안이 22대 국회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가 끝날 즈음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해 연말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며 판을 키웠다. 정부도 상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현재 국회에는 21건의 상법 개정안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주주 이익을 해치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강제적으로 원천 차단하겠다는 내용들이다.
재계는 안절부절이다. 발의된 개정안에 기업 경영에 치명상이 될 독소 조항이 많다며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 ‘일 년 내내 소송하라는 얘기’ ‘이사회 꾸리지도 못할 것’ 같은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주요 경제단체들도 잇따라 국회에 관련 법안의 문제점을 건의하고 있다. 늘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재계가 국회를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더컴퍼니가 꼼꼼히 살펴봤다.
1.시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법 개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방안을 고민하다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의 사업구조 개편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액 주주가 손실을 입어도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문제 의식이 불거지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LG화학 배터리 사업 물적 분할이다. LG화학은 2020년 9월 17일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물적 분할(현 LG에너지솔루션) 하겠다고 공시했다. 당시 LG화학은 “물적 분할 후에도 신설법인의 주식 100%를 LG화학이 보유하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주들은 투자한 회사의 알짜 사업을 떼어낸다는 데 반발했고 분할 방식에도 불만을 제기했다. 물적 분할 공시 전 주당 70만원을 웃돌던 LG화학 주가는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을 거쳐 현재 주당 30만원대 초반이다. 지금도 LG화학 주가 하락의 이유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외에 물적 분할이 꼽힌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자 회사가 동시 상장될 경우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주식 가치가 더블카운팅(이중계산)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모회사 지배주주가 자회사 성장에 주력할 경우 모회사의 성장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 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LG화학 일반 주주들은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지만, 구제받을 방법은 없었다. 현재 발의된 상법 개정안들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된 배경이다.
▶소액 주주 보호 장치 필요성 부각
20대, 21대 국회에서 모두 폐기된 상법 개정안이 올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한국 주식시장 육성’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논의에 불을 지폈다. 한국거래소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소액 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하면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6월 자본시장연구원‧증권학회 주관 세미나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하려면 상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며 윤 대통령 편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