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 송이 꽃밭에 핀 '희로애락'

2025-11-07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들은 9000송이의 핑크빛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황홀한 무대를 마주하게 된다. 꽃밭이 흐트러질까 조심스레 등장한 무용수들은 객석으로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관객들에 말을 거는가 하면 조지 거쉬윈의 1972년 곡 ‘내가 사랑하는 남자(The man I love)’를 수어로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평화롭고 서정적인 광경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셰퍼드를 끌고 와 “여권을 달라”며 무용수들을 위협한다. 이들은 또 무용수들의 몸짓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천국 같던 꽃밭을 억압과 부조리가 지배하는 잔혹한 공간으로 전락시킨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작으로 한국 관객들을 처음 만났던 20세기 공연예술의 걸작 ‘카네이션’이 6일 25년 만에 다시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서 막을 올렸다. 높은 기대감 속에 일찌감치 전회차 매진됐던 공연은 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14~15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무대를 이어간다.

‘카네이션’은 독일 출신의 천재 무용가로 기억되는 피나 바우쉬(1940~2009)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무대를 가득 채운 수천 송이의 카네이션이 선사하는 시각적 충격은 피나 바우쉬의 이름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다. 또 대사와 음악이 어우러지고 놀이 등 일상 행동과 춤이 동등한 비중으로 공연을 이끄는, 그녀만의 독창적인 방법론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문 ‘탄츠테아터(무용+연극)’ 장르를 확립시킨 작품인 셈이다.

사실 ‘카네이션’은 단번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서사는 비선형적이고 장면은 단편적이라 논리적 해석이 쉽지 않아서다. 무대 위 무용수들은 화려한 테크닉을 뽐내며 춤추기보다는 걷고 뛰며 울고 웃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듯 보인다.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의 대사들은 의미를 알기 어렵고 갑작스러운 폭력이 벌어져 아연해지기도 한다.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탄츠테아터 부퍼탈 무용단원으로 이번 공연에 리허설 어시스턴트로 참여한 김나영 역시 ‘카네이션’에 대한 첫 인상을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주제와 몸짓, 상징적인 시퀀스가 있으니 순수한 놀이와 몸짓이 과도한 억압 탓에 다툼으로 변질되는 장면이다. 즐겁게 시작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가 싸움으로 번지고 음식을 맛보는 즐거운 과정이 억지로 음식을 입에 쑤셔 넣는 괴로움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무용수들은 다시 노래하고 춤을 춘다. 춤을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그들을 보며 관객들은 ‘왜 춤을 추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무대 위로 쏟아지는 사랑, 두려움, 욕망 등의 감정을 전해받으며 관객들은 인간 삶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본질에 서서히 다가가게 된다.

2009년 바우쉬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그의 무용단 탄츠테아터 부퍼탈이 올리는 공연을 ‘바우쉬의 무대’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무대는 보여줬다. 바우쉬는 무용수와의 대화와 교감에서 안무를 추출하는 독특한 방식을 활용했기에 그녀의 존재가 작품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바우쉬가 없는 ‘카네이션’ 또한 그녀의 분명한 유산으로 인정받을 만해 보인다. ‘카네이션’이 독특한 무대 장치와 상징적인 시퀀스를 통해 드러내는 메시지의 힘은 그녀의 부재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탄츠테아터 부퍼탈은 생전 바우쉬와 함께 작업했던 무용수들이 그녀의 기억과 철학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술감독인 다니엘 지크하우스는 “우리 무용수 34명 중 15명이 바우쉬와 작업을 했다. 그 존재가 선물이자 특혜”라고 짚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