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과학 실습 시간이었다. 실험실 유리병에는 개구리들이 들어 있었다. 잠시 후 에테르에 취한 개구리들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잠이 들었다. 조별로 개구리를 꺼내어 칠판에 게시된 해부도와 개구리 몸속의 실제 장기들과 비교하였다. 나를 포함한 일부 학생들이 아직 살아 있던 개구리를 땅에 묻지 못하고 한참을 주저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개구리 해부가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적 도움을 줬을까?
고등학교는 생물이 선택과목이었다. 매주 생물 수업이 기다려졌다. 생물 선생님이 먹이사슬을 보여주며 맹금류를 흉내 내시는 모습이 그리 재미있었다. 책상을 박차고 날아가 선생님의 팔에 내려앉고 싶을 정도였다. 그 후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서 아나운서가 야생동물을 맛깔나게 설명할 때면 생물 선생님이 생각났다. 동물원에 일하면서도 생물 교사 자격 취득을 위해 교육대학원 진학을 고려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대안학교 생물 선생님을 상상해본다. 날이 좋아 참기 어려운 날, 아이들과 산과 들에 나가 야생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에 나온 아이들 표정이 화창하다!
도심에 살면 야생동물을 처음 만나는 곳이 동물원일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환경이라면 야생동물과 자연을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 함부로 대하기 쉽다. 요즘은 동물원 찬성론자들도 단순한 동물전시를 반대하고 있으며 동물원의 역할이 멸종위기종의 보전과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동물원의 역할이 멸종위기종 보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종보전은 연구인력, 예산, 서식지관리 등 많은 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서식지와 연결되지 않는 동물증식은 종보전보다는 전시동물 생산에 가깝다.
그동안 동물원의 주요 방문객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아동과 가족들이었다. 순수한 아동들은 그냥 동물이 좋다. 토끼만 있어도 좋고 먹이 체험 동물도 좋다. 일부 동물원 운영자들은 이런 점을 활용해 동물이 희생되는 만지기나 먹이주기 체험 위주의 단순한 콘텐츠를 양산한다. 그러나 아동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 다시 부모가 될 때까지 동물원에 잘 오지 않는다. 더욱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동물원은 운영이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어느 한쪽이 희생되지 않는 동물과 사람 모두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청주동물원은 과거 130종의 동물들이 있었다. 생김새만을 전시하니 종과 동물 수가 많아야 볼 것이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은 외국동물이 자연 감소하면 같은 종을 데려오는 대신 그곳을 허물어 옆 칸에 사는 동물의 공간을 넓혀준다. 현재 60여 종의 동물들이 과거보다 넓은 집과 숨을 곳을 갖게 됐고 불안감과 정형행동도 많이 줄었다. 생각해보자! 단지 몇초에서 몇분씩 수많은 동물을 보고 가면 기억에 남는 동물이 과연 몇종이나 있을까? 찰나의 구경을 위해 더 많은 종이 더 좁은 곳에 갇혀야 한다는 건 비윤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처럼 한 종을 깊이 알아보면 어떨까? 알고 나면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아이디어도 떠오를 것이다.
몇년 전 인공횃대에 박제처럼 앉아 있던 올빼미가 있었다. 관찰해보니 방문객이 올빼미를 보는 시간은 겨우 5초 이내였다. 지금은 소나무 가지에 숨어 있는 올빼미를 찾는 데만 수분이 걸린다. 찾는 과정에서 국내 토종 올빼미가 소나무 가지와 같은 보호색을 갖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팬덤까지 일으킨 푸바오는 눈이 많이 오고 검은 바위가 있는 지역에 산다. 그 풍경을 오려놓으면 푸바오가 된다. 올빼미는 주행성 조류와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밤에 사냥한다. 주행성 조류들이 시각에 의존하는 반면 올빼미는 청각을 이용해 사냥한다. 조용한 밤, 근거리에서 쥐가 풀을 밟고 지나가는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포착한 올빼미는 쥐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린다. 원형 안테나 같은 둥근 얼굴로 쥐가 내는 소리를 모아 털 속의 양쪽 귓구멍으로 전달한다. 두 귓구멍은 우리와는 다르게 비대칭이다. 즉 한쪽 귓구멍이 다른 쪽 귓구멍보다 높이 달려 있다. 눈을 감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올빼미가 되어보자. 높이가 다른 귓구멍이기에 3차원 공간에서 쥐의 좌표를 그리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각이 발달한 올빼미 주변에서는 조용히 봐야 한다는 동물원 예절은 덤으로 배운다.
이번엔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동물, 호랑이에 대해 알아보자. 호랑이는 주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지녔다. 호랑이는 숨어 있다가 사슴이 주위 경계를 허물 때 급습하는 전략을 쓴다. 사냥감이 되는 사슴은 호랑이의 주황을 보지 못하는 색맹이다. 검은 줄무늬는 어두운 숲속 나뭇가지와 겹쳐 사슴에게 있어 숨죽인 호랑이는 감각할 수 없는 유령이다. 호랑이가 달려들며 크게 포효하면 사슴은 얼어붙어 숨통을 물리는 고통을 덜 느낀다. 사슴의 마지막 숨이 멎는 것은 호랑이 입 주변 하얀 수염의 떨림이 멈춘 순간이다. 동물원에 마련해둔 숨는 공간은 우선 호랑이를 위한 것이지만 사냥 습성의 설명도 가능케 한다. 또 그곳에 호랑이가 알아차릴 수 없는 작은 카메라를 달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못내 아쉬운 방문객들의 호응을 이끌 수 있다.
추워지면 동물들은 몸의 변화로 대비한다. 여우는 진작에 겨울털로 갈아입었다. 여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에서 왜 여우가 사람을 홀리며 아홉 개 꼬리를 지닌 구미호가 됐는지 알 것 같다. 여우의 꼬리는 겨울이 깊어갈수록 두툼해진다. 정말 꼬리가 아홉 개나 들어갈 정도의 두께다. 찬 바람이 불면 움푹한 땅에 누워 꼬리로 몸 전체를 두른다. 풍성하고 윤기 나는 오렌지색 털빛이 나의 마음을 홀린다.
반달가슴곰들은 월동준비로 분주하다. 떨어진 낙엽을 모아 곰사에 넣어주니 자신들의 자리에 낙엽을 가져다가 편다. 6년 전 농장에서 구조된 사육 곰은 앞발이 자유롭다. 가슴에 낙엽을 한아름 안고 가 높게 매달린 자신의 해먹에 까치발로 부려놓는다. 웅담 채취 농장에서 태어나 야생을 모르는 반달가슴곰들이 낙엽이 보온재가 된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오소리와 너구리도 가을이 되면서 몸에 지방을 축적해 동글동글해졌다. 야생이라면 반달가슴곰, 오소리, 너구리 모두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지만 먹이가 주어지는 동물원에서는 동면을 하지 않는다. 다만 활동적인 반달가슴곰과는 다르게 오소리와 너구리는 주로 굴 안에 머물며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방문객들은 겨울철 오소리와 너구리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고 못 보는 것을 받아들이며 봄이 오면 다시 만날 기대를 한다.
며칠 전 초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초대로 충북 제천을 다녀왔다. 담임선생님들과 6학년 전체 학생들이 청주동물원을 방문한 후 각자 원하는 동물의 공간을 폐종이를 활용해 디오라마를 제작하고 발표하는 행사였다. 동물원을 찾지 않던 친구들이 동물원을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는 내내 마음이 밝아졌다. 동물원이 시민의 열린 공간이라면 야생동물에 관한 질 높은 콘텐츠로 전 연령층이 찾는 생태 교육기관이길 바란다. 나도 그 시절 생물 선생님을 흉내 내며 사심을 채우고자 한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