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읽고 쓰기’ 주제 강연
중학생들의 살아있는 질문에 감동
계엄 후 거리로 쏟아진 1020세대
젊은 ‘길벗’들에게 행운이 깃들길
순간 멘붕에 빠졌다. 고등학교라 생각했는데, 강의 며칠 전 중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고딩’이나 ‘중딩’이나 그게 그거 아냐?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교육 현장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쫌! 아는 이들은 즉각 이렇게 반응한다. ‘아휴! 어쩌다가?’
코로나 이전, 한 10여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그때 본 교육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시설과 환경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교실의 활기는 완전히 죽어 있었다. 활발한 교감을 기대하고 갔다가 곧잘 기를 완전히 빼앗긴 채 돌아오기 일쑤였다. 1987년 민주항쟁 때 목놓아 외친 구호 중 하나가 ‘교육민주화’였다. 그때 이런 교실의 풍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가끔씩 중학교 강의를 간 적이 있었다. 거기는 아수라장이었다. 어떤 선생님도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고등학교가 무기력의 끝장판이었다면, 중학교는 산만함의 절정이었다. 이후 중학교 강의는 완전히 ‘손절’했다. 한데 지난가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주제가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라는 책이었다. ‘읽기와 쓰기’를 ‘인류학적’이고 ‘존재론적’ 관점에서 쓴 책인데 이걸 중학생이 읽는다고? 헐~
온갖 ‘정신승리법’으로 무장한 뒤, 간신히 강연장에 들어섰는데, 뜻밖에도 강의 전에 낭송타임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서너 명씩 팀을 짜서 하는 형식이었는데, ‘생명·진리·문명’ 등 꽤 묵직한 낱말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어? 이게 아닌데….
당혹감 속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책에 대한 내용은 포기하고, 50년 전 나의 ‘중딩’ 시절 이야기로 시작했다. 강원도의 작은 광산촌 학교라서 하루에 두 시간은 꼭 ‘삽질(운동장 개간)’을 해야 했고, 교사가 부족하여 정규 수업을 다 채울 수 없었으며, 하여 친구들과 함께 독서클럽을 만들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성적이나 진학 등과 무관하게 그냥 ‘읽고 쓰는’ 것이 너무 좋았노라고, 그때 느낀 ‘진리와 앎’에 대한 기쁨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시간. 질문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책에 진리가 있다고 보시나요?’ ‘진리가 어떤 기쁨을 주나요?’ ‘왜 자본주의가 반생명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등등. 오, 중학생들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찼다.
물론 그 뒤에는 담당 교사의 열정적인 지도가 있었다. 미리 책을 읽고 팀을 짜서 토론과 낭송을 준비하고 등등.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실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얼마 뒤 강의 후기가 첨부된 학생들의 메일이 여럿 도착했다. “요즘 청소년들은 성적과 스펙으로 연결되지 않는 공부를 할 줄 모른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그동안 성적을 위해서만 공부했는데 그러다보니 늘 지쳤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세상과 교감해야 한다는 게 인상 깊었다” “스승이 있어야 벗이 있다는 것, 인생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 창조하지 않으면 파괴된다는 게 인상 깊었다” 등등.
와우!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공포의 중딩이 아니라 소중한 길벗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길벗!
여기까지 이 칼럼을 써두었는데, ‘12월3일의 밤’을 맞이했다.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며 정신병리학적인, 아니 그 무엇으로도 설명 불가능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제 결코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그날의 ‘악몽’ 때문이 아니라 그토록 갈망한 광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광장의 파토스를 주도한 건 비상계엄 속에서 청춘을 보낸 86세대가 아니라 ‘각자도생’ 시대를 살아가는 1020세대였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헬!조선’을 되뇌던 그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분노의 열기와 연대의 열정, K팝과 민중가요, 비장과 유머가 자유자재로 교차하는,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다.
순간 스치는 생각. 혹시 지난가을 중딩 길벗들과의 마주침이 이 놀라운 신세계에 대한 예고편이었던가? 그 마주침이 우연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 운명을 내장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좋다! 광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2월3일의 밤이 우리의 상상력을 박살냈듯이, ‘다시 만난 세계’ 또한 ‘상상 그 이상의 길’을 열 것이다. 모든 길벗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