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로 인해 충암고등학교가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라는 이유로 비난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대통령의 모교는 독재와 탄핵 등 정치 이슈와 결부돼 관심을 끌었다. 당선 때는 현수막을 내걸며 환영했지만, 정권 말기로 가며 동문과 재학생들이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탄핵 때 등장한 “선배가 부끄럽다” 대자보
대통령 동문을 향한 재학생들의 쓴소리는 탄핵 국면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성심여자고등학교 8회 졸업생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만 해도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후배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엔 성심여고 정문에 ‘선배님, 성심의 교훈을 기억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글쓴이는 “성심여고 학생임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저희의 심정을 알아달라”며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는 학교 관계자는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동창들과 분노하는 재학생들의 간극이 컸다”며 “다만 현재 충암고는 계엄사태에 개입한 동문이 많아 여론의 표적이 된 것 같지만 그때는 ‘성심여고 라인’이랄 것도 없어 다행히 학교나 학생들이 입은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충암고 남 일 같지 않다”는 전두환 모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교 대구공업고등학교는 2012년 총동문회 주도로 교내 역사관 건물에 전두환 자료실을 만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시민단체들이 “공립학교에서 잇단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인물을 기리는 자료실을 개관하는 것은 몰역사, 반민주, 반교육적인 일이다”며 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비난이 빗발치자 결국 한 달도 안 돼 폐쇄됐다.
대구공고 관계자는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라 재학생들은 그런 논란이 있었는지조차 잘 모른다”며 “그런데도 대외적으로 대구공고하면 전두환부터 떠올리는 인식이 여전해 학교로선 난처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오래전 학교를 졸업한 동문일 뿐 학교는 죄가 없는데 충암고가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당선 사진 내려라”… 동문끼리 갈등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등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경남고등학교는 정치 성향이 다른 동문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2020년에 경남고 애국동문회 소속 20여명의 회원은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문 대통령이 동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경남고 총동문회 측은 “이름도 처음 듣는 단체”라며 “총동문회와 전혀 무관하고 공식 입장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총동문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 당선 때는 동문회 홈페이지에 당선 축하 사진을 내걸었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행보로 모교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부산상업고등학교를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지상업고등학교를 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200여명 규모의 동창회를 열었다가 “지연·학연 분위기 조성하는 특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과거엔 없었던 ‘재학생 위협’ 우려 커져
대통령의 모교가 주목을 받은 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최근 충암고 사태는 재학생을 향한 실질적인 위협까지 가해진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시민이 충암고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 계란을 던지거나 욕설을 하면서 교장과 학부모회장이 국회에 출석해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12일 충암고를 찾은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외부 요인으로 학교가 상처받는 상황 매우 안타깝다”며 “학생들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만큼 학교 안정화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