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상환금 부담에 대출 연명 악순환”
과거 정부 유사정책 모두 한계 드러내
전문가 “채무 방치땐 국가가 떠안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로 인한 부채 탕감을 위해 ‘배드뱅크’ 설립 논의가 구체화하는 가운데 빚 탕감을 통해 자영업자의 퇴로를 마련, 구조조정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조명받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배드뱅크 설립을 통해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을 탕감·조정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배드뱅크란 상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인수해 정리하는 구조조정 전담기관을 말한다.

배드뱅크 형식의 소상공인 채무조정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노무현정부는 카드 사태 회복을 위해 2004년과 2005년 각각 한마음금융·희망모아를 출범시켰고, 이명박·박근혜정부도 각각 2008년과 2013년 가계부채 감소를 위해 신용회복기금·국민행복기금을 내보였다.
하지만 한마음금융·희망모아는 원금 감면이 없어 실질적인 부담 해소에 한계가 있었고, 원리금 감면에 주력했던 국민행복기금은 신용대출에만 적용돼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드뱅크와 유사했던 2022년 윤석열정부의 ‘새출발기금’은 신청이 까다롭고 약정 체결률도 28%에 그쳐 참여율이 낮았다.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 빚 탕감에 따른 도덕적 해이 우려도 반복됐다.
2022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과거 배드뱅크의 이 같은 한계를 지적하며 배드뱅크를 자영업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통로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적잖은 소상공인이 폐업을 희망하나 대출 일시상환 부담 탓에 사업이 부진해도 대출로 연명한다”며 “이는 소상공인의 사업 환경을 더 경쟁적으로 만드는 악순환”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한계 소상공인의 퇴출을 원활하게 해 국내 자영업자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도록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23.2%로 OECD 평균(16.6%)을 크게 웃돈다.
시민사회에서도 과감한 채무 탕감을 주문했다. 장기부실채권 정리를 수행해 온 비영리단체 주빌리은행의 유순덕 이사는 “(배드뱅크를 운영해 온)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권 회수 실적을 신경 쓰다 보니 채무자들이 기초수급자를 탈피하면 추심 위기에 놓일까 봐 경제적 자립을 포기하고 있다”며 “추심 위주로 진행되면 사업 목적이 퇴색된다”고 강조했다.
도덕적 해이 논란에는 “당장 세금이 아깝다고 취약계층, 청년층의 채무를 방치한다면 나중에 국가가 이들을 오롯이 부양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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