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사태를 맞아 신(新) 민중가요로 떠오른 ‘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 2007)가 맨 처음 집회에서 불린 건 2016년 소위 ‘이화여대 농성 사태’ 때다. 학교 측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반대하며 재학생·졸업생이 점거 시위를 벌이던 중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당시 학내 곳곳엔 각종 플래카드와 호소문이 나부꼈다. 이 중 일부가 이대박물관 측에 의해 수거됐다. 당장 유물로 분류되진 않아도 역사의 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시위 현장에서도 바삐 움직인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 종로구) 직원들이 수집한 것들엔 MZ세대의 변화된 시위 문화를 보여주는 야광 탄핵 응원봉, 각종 핫팩·풍선과 손 태극기 등이 포함됐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알린 중앙일보 호외도 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고대인의 ‘생활 쓰레기’가 얼마나 큰 역사적 힌트가 되는지를 생각하면, 이 같은 수집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자료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 사례도 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연세대 학생이던 김달중·안병준이 부상자·데모목격자·연행자 등을 만나 남긴 참여자 조사서가 대표적이다. 연행 도중 감정을 묻자 “정정당당하나 공산주의라는 누명 씌운 고문이 있을지 두려웠다” 등의 증언이 박제됐다. 당시 현장에서 수집한 비상계엄포고문 등 유인물과 학생들이 찬 완장, 벽보와 함께 2020년 등록유산이 됐다. 혁명의 도화선이 된 4·18 고려대 시위의 부상자 명단도 별건으로 등록됐다.
역사적 격변이란 게 그때 거기에 있었다고 해서 의미와 파장을 제대로 알 수 없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워싱턴 DC의 국립미국역사박물관 큐레이터들은 무엇을 수집하고 보존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1914년 6월 24일 사라예보에 살았다면 무엇을 수집했을까?” 당시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해 쏜 총탄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박물관 홈페이지의 에세이 ‘9·11 수집하기: 한 큐레이터의 이야기’ 참고).
그 때문에 그들은 기초 컬렉션에 충실을 기하기로 했다. 공격 현장 자체의 파편과 잔해, 그리고 희생자들을 기록한 사진들이 포함됐다. 나아가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물건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한 큐레이터는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어느 창문닦이의 사연에 끌렸다. 세계무역센터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그는 자신의 청소도구를 활용해 가까스로 문을 열고 탈출했다. 박물관은 거듭된 요청 끝에 그의 유니폼과 먼지 묻은 청소도구를 기증받을 수 있었다. “수동적 수집이 아니라 그때 그 장소의 실존적 인간과 연결되는 컬렉션이 더 큰 의미를 띠게 된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수진 교육과장)는 관점이다. 우리의 오늘이 그렇게 역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