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노벨문학상과 영화 '사탄탱고'

2025-10-14

2000년 5월, 첫 막을 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영화가 있다. 익숙했던 영화에 대한 관념을 깨고 낯선 영화의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였던 전주영화제 상영작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이 영화는 세계적 거장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탱고>였다. 상영시간 438분. 무려 7시간 18분짜리인 이 영화는 ‘두 시간 안팎’ 정도로 정해두었던(?) 기존 영화의 상영시간을 세 배 이상 뛰어넘으며 국내에서 필름으로 상영된 가장 긴 영화가 됐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가는 1980년대, 헝가리를 배경으로 기적에 대한 기대와 절망을 그린 이 영화는 헝가리의 대평원을 배경으로 기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해 전주영화제의 특별섹션인 ‘미드나잇 스페셜’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던 <사탄탱고>는 그 뒤로도 줄곧 화제의 영화 대열에 있었지만, 동시대 가장 위대한 영화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벨라 타르 감독의 기념비적 영화로 꼽혀왔을 뿐 원작자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희망과 몰락이 뒤엉킨 사람들의 모습을 집요하게 쫓는 영화 <사탄탱고>의 원작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작가로는 임레 케르테스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종말론적 두려움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하며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중부 유럽 전통을 잇는 위대한 서사 작가’라고 밝혔다.

사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지만 놀랍게도 여섯 개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사탄탱고>는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선두 작품도 영화로 먼저 알려진 <사탄탱고>다.

알고 보니 국내에서 소개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6개 작품 모두를 독점 번역한 것은 ‘알마’라는 작은 출판사다. 알마는 2016년 <사탄탱고>를 시작으로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서왕모의 강림> <세계는 계속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시리즈로 기획해 꾸준히 펴냈다. 1쇄 판매도 마치지 못한 작품도 있으니 경제적 부담이 컸겠지만 알마는 남다른 의지로 시리즈를 지켰다.

알마의 안 지미 대표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을 출간하게 된 뒷이야기도 화제다. 안 대표는 25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사탄탱고>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 받은 깊은 감동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 출간을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독점 번역은 그의 선구적 안목과 의지의 결실이었던 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영화 <사탄탱고>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나게 해준 전주국제영화제의 탁월했던 선택이 새삼스럽다./김은정 선임기자

##크르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노벨문학상 ##임레 케르테스 ##영화 사탄탱고 ##출판사 알마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상영시간 438분 ##헝가리 노벨문학상 작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