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경영권 집착'···흔들리는 그룹 위상

2024-10-20

"최근 몇 년새 흐름이 매우 안좋다. 신동빈 회장이 직접 비상 경영을 선포하고 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것이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뚜렷한 카드도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달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열린 롯데재단 행사에 만난 롯데그룹 한 전직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롯데그룹이 신음 중이다. 비상 경영에 돌입하고 고강도 체질개선에 나섰다지만 회복속도는 더디기만하다. 그룹 양대 축으로 꼽히는 유통과 화학 사업 모두 깊은 부진에 빠졌다. 미래 먹거리로 꼽힌 바이오 사업도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 롯데그룹의 쪼그라든 위상이 이를 대변해준다. 재계 '빅5'(삼성·SK·현대차·LG·포스코)와 6위인 롯데의 격차가 벌어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앞서 롯데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에서 2023년 5위에서 6위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당시 포스코그룹의 보유 자산이 장부가에서 공정가치로 재평가되며 역전이 일었고, 이때의 순위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올해 롯데는 전년과 같은 6위 자리를 유지했으나, 포스코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오히려 7위인 한화그룹과 공정자산총액 규모 차이가 좁혀지고 있는 모습이다. 2023년 46조6290억원이던 격차는 올해들어 17조3660억원으로 줄었다. 롯데그룹보다 한화그룹의 자산총액 증가율이 더 높았던 탓이다.

무엇보다 롯데의 두 축인 유통과 화학 사업이 흔들리며 그룹 내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화학 분야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은 올 상반기 2464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2022년 7626억원, 지난해 3477억원에 이어 올해까지 3년째 적자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2022년 이후 발생한 누적 적자 규모는 1조원을 훌쩍 넘는다. 유통 계열사 롯데쇼핑의 올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797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유통과 화학이 그룹을 받치기는커녕 오히려 전체 실적을 끌어내린 셈이다.

산업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을 하지 못한데다 이렇다 할 신사업도 일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롯데가 내세운 자구책도 교과서적인 것들 뿐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계열사들의 수건 짜내기다. 계열사들은 임대료가 낮은 곳으로 이전하기 시작했고,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계에서 굵직한 인수합병(M&A)이나 과감한 장기적 투자로 신사업을 키워 굴지의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과 SK와 같은 '변화'와 '도전'을 롯데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던 유통과 화학사업이 모두 위기를 맞으며 자금 동원력이 약해진데다, 신사업 마저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그룹 전체가 위축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롯데 안팎에서도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형제의 난'을 꼽는다. 지난 2015년부터 4년 간 이어진 신동빈 회장과 그의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지금의 롯데로 이끈 결정타라는 것이다. 이른 바 롯데의 '잃어버린 4년'이다. 형제 간 기나긴 싸움이 그룹 내 위기의식 약화와 혁신 역량 소진으로 이어졌고, 미래를 위한 투자 기회를 놓치며 사업 재편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쿠팡 등 이커머스들이 몸집을 키우며 유통 시장을 잠식해가는 상황에서 롯데는 이렇다 할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2017년 17조9261억원이던 롯데쇼핑의 매출은 2020년 16조1844억원으로 내려 앉았다. 지난해에는 14조5559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2020년 4월에서야 3조원을 투자해 7개 계열사 쇼핑몰을 하나로 합친 통합 앱 롯데온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처참했다. 지난 5년간 누적 손실액 5300억원을 보고서야 실패를 인정하고 '원롯데' 전략을 포기하기로 했다. 뚜렷한 전략도 없이 출시 자체가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동주 회장과의 기나긴 다툼 끝에 경영권을 확보한 신동빈 회장의 인사에 대해서도 재계의 평가는 박하다. 흔들리던 그룹을 추스르고,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른바 '신동빈의 남자'들로 불리던 최측근들을 계열사 대표로 앉히다 보니 서스름 없이 직언할 인재가 부족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그룹 2인자로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대표적"이라며 "과거 롯데월드와 롯데하이마트 대표 시절 눈에 띄는 경영 성과보다는 갑질로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로 지주 대표 선임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 바 있다"고 했다.

다시 관심은 롯데그룹의 올해 임원 인사에 쏠린다. 코로나19 때에도 비상경영을 선포하지 않았던 신 회장이 얼마나 강력한 쇄신 인사를 단행할지에 대한 여부다. 움츠러든 롯데의 비상을 예견케 하는 복안이 인사를 통해 드러날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내년 3월 등기임원 임기 만료를 앞둔 계열사 대표로는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이영구 롯데웰푸드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 남창희 롯데하이마트 대표, 황진구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 김주남 롯데면세점 대표 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임원 인사는 그룹의 비전과 방향성을 알리는 바로미터"라며 "신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임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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