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보다가, 원작 소설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됐는데, 청소년 고전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로버트 왈튼(선장)이 북극 항해 중에 잉글랜드의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 속 이야기다.
“썰매가 달려있고, 개들이 끌고 가고 있었지. 썰매는 북극으로 가고 있었고,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었어. 사람의 모습을 지녔지만 거인의 체격을 지닌 존재가 썰매에 앉아서 개들을 몰고 있었다.” 다음 날 썰매가 빙하에 떠밀려 내려왔고, 거기엔 전날 보았던 거인과는 다른 원주민 행색의 이방인이 타고 있었다. 선장은 이방인을 배에 태워 간호하면서 그가 창조한 괴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가 괴물을 만든 이유는 35쪽에서 드러난다.
“생명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생리학과 관련된 자연철학 분야들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번개에 맞은 고운 떡갈나무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 후 화자는 2.5미터 정도 되는 키에 균형 잡힌 체형으로 된 커다란 형상을 만들기로 한다. 나는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흥분한 상태였다. 새로운 종이 나를 창조자이며 자신의 근원으로 생각하며 내게 고마워하겠지. 빼어난 행운아들이 자신의 존재가 내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기겠지. 세상의 어느 아버지도 자식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막상 내가 만들어 놓은 생명의 실체는 달랐다. 아인슈타인이 원자폭탄을 만들 때만 해도 원자폭탄이 어떻게 쓰일지 몰랐을 테고, 과학에도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이견이 없는 시대지만, 어떤 연구로 인한 결과가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는 연구의 위험이 이 소설의 문제의식 중 하나이다. 소설을 읽는 재미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영화로 이 소설의 내용을 접했겠지만 괴물 이야기도 아니며, 오늘날 SF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내용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이 보기 좋기는커녕! 근육과 혈관들이 누런 피부 위로 훤히 내비치는 괴물의 모습을 가지자 공포와 혐오감을 견디지 못하고 괴물을 내팽개치고 도망쳐버린다. 괴물은 종적을 감추었지만 나는 괴물의 존재를 내 안의 뱀파이어라고 생각한다. 괴물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표현은 이 소설이 영화로, 토론 거리로 만들어지게 되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의식이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을 차례로 죽이며 나타난다. 그의 요구는 자신의 동족을 만들어달란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이를 거절한다.
이제 피조물의 시점에서 생각해보자. 이 소설의 탁월한 재미는 여기에 있다. 어느 날 나는 괴물로 만들어졌고, 날 만든 창조주는 제일 먼저 나를 부정하고 쫓아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시 버림받고, 고통받았다. 나는 왜? 라는 실존적 물음에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다. 내가 만약 괴물이라면, 내가 만약 괴물을 낳았다면, 우리가 부모·자식 관계라면 어떨까. 생각하게 만든다.
메리 셸리는 1797년 8월 30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생후 11일에 모친을 여의고, 배다른 언니인 패니 임레이와 함께 부친의 손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1818년 3월 21살의 나이에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했다. 1831년 프랑켄슈타인을 개작해서 발표했다.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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