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만은 피하고 싶은 기업인들에게

2024-10-14

22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8일 기준 중앙일보가 국회 상임위 15개의 일반증인 명단을 분석해보니, 전체 470명 중 현직 기업 총수나 임원 등 기업인이 159명으로, 지난해(95명)보다 더 늘었다.

하지만 올해도 기업인을 불러 놓고 7시간 넘게 대기시켰다가 3~4분 만에 문답을 끝내는, 벌 세우기가 반복되고 있다. 총수나 최고경영자(CEO)가 ‘이런 꼴’ 안 당하도록 각 기업의 대관 담당자들은 국감 당일 아침까지 사방팔방으로 뛴다. 바쁜 기업인들을 기껏 불러다 놓고 국회는 왜 그렇게밖에 못할까.

증인 명단 빠지기 위해 동분서주

할 말 하는 기업인 우리도 나와야

반기업 정서 맞서 국민 설득하길

사실 국회의원들이 일 년 중 약 보름간 몰아치기로 행정부를 감사하는 형식도 문제인데, 그 와중에 민간 기업인들까지 불러다 호통을 치니 국감은 언젠가부터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건 없는 밥상’이 됐다. 기획성 연례행사 같은 정기 국감을 상시 국감 혹은 청문회 체제로 바꾸자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그러나 현재 국회를 보면 스스로 쇄신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생각을 바꿔보면 어떤가. 국민의 대리인들이 부르는 자리를 마냥 피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잘 대비해서, 의원들에게 할 말 제대로 하고 여론 설득의 기회로 삼아보라는 얘기다.

2018년 국감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그랬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정유섭 의원이 ‘백 대표 가맹점이 손님을 다 뺏어가니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이 어렵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백 대표는 “의원님, 진짜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라며 되물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자영업자가 더 어려운 건 프랜차이즈 때문이 아니라 준비가 부족한데도 음식점 허가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국감 이후 백 대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포털 권력’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도 국감에 여러 번 출석했지만, 호통만 듣다 가진 않았다. 특히 2021년 국감에선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의원들의 지적에 “새겨듣겠다”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강화되는 규제가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에만 적용돼 글로벌 기업과의 역차별이 커질까 봐 우려되니 규제의 효과를 잘 따져달라는 주장이었다. 해외에 서버가 있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글로벌 플랫폼 문제에 여론의 관심이 이어지는 데 이 창업자의 발언은 분명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어떻게 이런 작심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현재로선) 불법 경영권 승계나 사익편취 등 일부 대기업들이 비난받는 문제로부터 이들은 자유롭기 때문일까. 이들의 인간 됨됨이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경영자로서 고민과 비전을 밝힐 준비가 돼 있다면 카메라 앞에서 국회의원들과 대면하는 게 두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국 기업인들은 국감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다 간다. 카메라 앞의 그들은 왜 그렇게 초라한지…. 기업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기업의 과오는 지적받아 마땅하지만, 원하는 답변을 강요하는 의원들의 우악스러움은 국감의 목적도, 당위도 의심케 한다. 기업을 세게 때리는 게 정의요, 규제하는 게 공정인 양하며 반(反)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의원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고는 ‘국감 출석은 피하고 보자’는 기업들의 인식도 바꾸기 어렵다. (어떤 이유에서든) 많은 경제 주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업인들이 뒤로 숨기만 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시선을 돌려 잠깐 미국을 보자. 정기 국감 제도가 없는 미 의회에선 필요하면 청문회를 열어 기업 CEO들을 불러 모으고, 깊이 있는 질문으로 그들이 말하게 한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대선 여론 조작 문제나, 개인정보 유출, 청소년의 SNS 문제 등으로 수차례 의회 청문회에 나왔지만, 하고 싶은 말도 충분히 했다. 지난 2020년 미 하원에선 4대 빅테크 기업(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CEO들이 반독점 청문회에 불려와 저마다 자신들은 독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기의 청문도 진행됐다. 지난해 5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AI의 여론 조작 위험을 경고하며 AI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미 의회 청문회였다.

여기 출석한 기업인들이 곤란해 보이는가. 겉보기엔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은 청문회 덕분에 전 세계를 상대로 해명할 기회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기업 CEO의 청문회 발언을 보며 기업과 산업의 미래를 점검하고 투자에 참고한다. 성장 정체를 맞은 한국에서도 국회의원들에게 당당하게 기업 활동의 현실을 말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필요하다. 22대 국회에선 ‘국감 스타’ 기업인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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